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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얼마 전 중년의 한 남성분이 오마이컴퍼니 사무실에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오마이컴퍼니에서 펀딩을 통해 이 가족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이 큰 내상을 입었고, 그리고 생존자, 유가족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던 많은 분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아직까지 겪어내고 계십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세월호 희생자분들의 인양 현장에서 가장 고생을 하셨던 잠수사분들 중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증언하던,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세월호 희생자분들과 함께 하늘에 계시는 故 김관홍 잠수사가 뒷일을 부탁했던, 아내 김혜연씨와 꽃같은 세자녀의 이야기입니다.

 


 

#1. 혜연씨, 바다같은 관홍씨를 만나다.


혜연씨는 관홍씨를 2002년 5월 14일, 스킨스쿠버 동호회 모임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온라인으로 카페 활동을 하다가 이날 처음 만났다고 해요. 관홍씨는 스킨스쿠버 프로 강사였고, 혜연씨는 물을 워낙 좋아해서 취미삼아 참여했던 모임이었습니다.

당시 살던 곳이 같은 동네(은평구)였기에 가깝다는 인연으로 자주 얼굴을 보았답니다. 수영도 같이 하고, 헬스도 하구요, 둘 다 운동하는 걸 즐겨서 그렇게 같이 함께 운동하며 친해졌습니다.

혜연씨는 말합니다.

모임에서 스킨스쿠버를 하러 가면 관홍씨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어요. 사실 물에 있다 나오면 많이 힘든데, 음식도 하고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다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지랖이 넓은건데, 그때는 덩치는 산만한 사람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묵묵하게 도와주는 모습에 마음이 동했던 것 같아요."

나서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관홍씨의 모습에 첫만남부터 호감을 느꼈던 혜연씨는 만난 지 딱 3년 째 되던 2005년 5월 14일, 관홍씨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관홍씨는 처음부터 직업으로 잠수사를 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카드회사 채권팀에서 일을 했는데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첫아이를 낳을 즈음 민간 잠수사로 전향을 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부부는 일년의 절반은 함께 하지 못했어요. 사실 저같았으면 극렬 반대했겠다는 말에 혜연씨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일이고 바닷일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바다를 다녀오면 환상이 있어요. 누워있으면 물 속도 아닌데 고기가 떠다니는 것 같고... 저도 경험을 해봐서 남편의 심정을 이해했어요. 그런게 있거든요.
남편의 마음을 충분히 알았고 그래서 잠수사로 전향하는데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본인이 제일 잘하는 걸 한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2. 잠수사 VS 꽃집사장님


혜연씨는 2010년 6월 즈음 화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막내, 효가 태어나고 바로 시작한 것이지요. 시댁이 화원을 하셨기도 했고 관홍씨가 잠수일을 하는데 시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던지라 화원 운영을 권유하셨어요. 서오릉 근처에 있는 화원단지에서 혜연씨 부부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셋(다은,라은,효)을 키우면서 화원을 제대로 운영하기는 쉽지 않았고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홍씨가 ‘난’자격증도 있고, 분재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며 조경자격증을 따기 위해 함께 공부하러 다니고 했어요.

바다일을 했지만 화원은 같이 병행할 수 있는 일터였습니다. 관홍씨가 바다에서 돌아오면 함께 화원을 운영했고, 바다로 떠나면 혜원씨가 혼자 운영했습니다.
일의 특성 상 많은 꽃과 식물을 접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자연스레 꽃과 식물에 물을 주고, 벌레잡고 관찰하고.. 가족이 모두 즐겁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수도, 화원도 어느 것이 더 좋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혜연씨 부부에게는 즐겁고 행복하며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3. 세월호 사건 이후... 바뀐 일상

혜연씨네 가족은 함께 모이면 조잘조잘 말이 많았습니다. 또 부부는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랬대요. 남들이 혜연씨네 가족을 보면 귀가 따가워 딱지가 앉을 정도라고 할 만큼 시끄러운 가족이었으나 대화 속에서 서로 소통하며 정을 많이 나눴던 것 같습니다.

관홍씨는 아이들한테도 몸으로 많이 놀아주는 멋진 아빠였습니다. 물놀이도 많이 하고, 산도 많이 다니고, 시간날 때 마다 가족과 함께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부부는 배를 운전할 수 있는 조종면허도 따려고 했어요. 애들 다 키우면 섬에 가서 살자고... 배타고 고기 잡으며 살자고... 그렇게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관홍씨는 아이들과도 스킨스쿠버를 함께하고 싶어 큰애가 빨리 스킨스쿠버를 배울 수 있는 15살이 되면 좋겠다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이렇게 활기 넘치고 단란했던 한 가정은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이 바뀌게 됩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오후에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오전에는 다양한 오보가 나오기도 했고, 배가 완전히 침몰이 된 이후 연락이 왔던 것 같아요. 연락을 받았지만 처음엔 안가도 되는 줄 알았어요. 이미 많은 잠수사가 현장에 있다고 했구요.
그러다가 4월 23일날 가게 되었고, 26일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던 걸로 알아요.“

혜연씨는 관홍씨가 그곳에 간다고 했을 때 처음엔 반대를 했답니다.
처음엔 투입된 잠수사가 500명이라고 정부에서 말한게 허위로 밝혀졌지만 실제로 500명이 투입 됐다고 해도 그 맹골수도 해역이 물살이 세서 내로라하는 잠수사 10명이 일할 수 있을까 말까하는 위험지역이였거든요.

하지만 그는 결국 바다로 떠났습니다. 해역에서 매일 전화를 하는 중에도 힘들다는 말은 잘 안했기에 관홍씨가 겪었을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컸는지 나중되서야 알게되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다른 구조업체와 계약을 해야한다며 현장에 있던 잠수사들이 퇴거명령을 내린 7월 10일. 관홍씨도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에게 남은 건 정부의 무관심과 잠수병이었습니다.
더 이상 잠수사로서 일을 할 수 없었고 그 해 12월까지로 정부가 약속한 치료기간 이후의 대책이나 보상에 대한 이야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척 답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단체로 목소리를 낼 생각을 못하다가 뒤늦게 유가족들과 소통하며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때는 증언을 하기 위해 나서기도 했어요. 하지만 관홍씨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쳐갔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남편은 세월호 사건 이후 정말 많이 변했어요. 아이들과 한방에서 자던 사람이었는데 거실에서 잤어요. 그렇게 몸으로 놀이를 잘해주던 사람인데 트라우마 때문에 본인이 힘드니까, 아이들한테 손을 못대더라구요. 그리고 잠을 제대로 못잤어요. 깜깜해지면 세월호 아이들이 기억이 났다고 해요. 잠수병에 걸려 더 이상 잠수사를 할 수 없었기에 가정경제도 어려워졌고요... 결국 이렇게 잠을 못이룰 바엔 차라리 대리운전하며 돈을 벌겠다고 나가서 일을 했어요.”

몸이 아프니 신경이 예민해지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생활도 어려워지고요.... 그 말 많던 사람이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입만 열었다면 세월호 이야기였어요. 정부에 대해 실망했기에 비판을 반복하니 저도 인간인지라 남편을 언제나 이해하고 포용하기 힘들었던 것 같네요. 과거에는 더할 나위없이 아이들과 잘 놀고 쾌활한 아빠였는데, 아빠의 변한 모습을 보니 아이들도 무서워했어요.“

그러던 중... 관홍씨는 세월호피해자가족협의회 법률대리인이었던 박주민 변호사가 은평구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했을 때, 운전사 역할로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행복을 찾는 듯 했습니다. 캠프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분들을 집에 초대도 하고 그때마다 아이들을 자랑하기도 했지요. 박주민 변호사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날은 모두의 축제날이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박주민 의원이 2년 전 발의한 김관홍잠수사법은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4. 우리 꽃같은 아이들의 이야기

혜연씨에게는 세자녀가 있습니다.
사회부 기자를 꿈꾸는 13살 첫째 다은이, 건담, 레고 만들기를 좋아하는 11살 둘째 라은이, 그리고 아직은 아기같은 9살 막내 효가 있어요.
아이들이 방과 후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꽃바다>에 와서 다같이 공부와 숙제를 하고 밥먹고 운동하러 가는 일상입니다. 다은이는 복싱, 라은이와 효는 태권도를 배우고 있답니다. 혜연씨는 수영을 하고 있고요.

아이들이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1년 정도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는 혜연씨. 아빠가 함께했던 것들을 이제는 더 이상 못해주기 때문입니다.

관홍씨가 하늘나라에 간 이후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제일 신경 써 주신 것이, 효와 목욕탕에 함께 가기랍니다. 관홍씨가 효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탕에 갔었는데 혜연씨가 대신 해줄 수 없는 부분이라 낭패였거든요. 자원봉사자분들이 효를 데리고 목욕탕에 다녀주시고 하시니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남편을 잃은 충격을 어떻게 견뎌낼 수 었었냐는 물음에 혜연씨는 답합니다.

“다은이가 크게 상처를 받고 자꾸 안좋은 꿈을 꿔서 아이의 마음을 치료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러느라 저는 힘든 줄도 몰랐네요. 우선 어린아이들부터 신경쓰고 챙겨야한다는 생각에요.
중간에 카운셀링을 해주시겠다고 한 분도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 셋 키우면서 정신없고, 일하다보니 그런 여유가 없었어요. 그냥 주말에 아빠가 있는 곳에 자주 찾아갔고 그렇게 아이들이랑 자연스럽게 아빠를 기억하면서 슬픔과 상처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아빠의 변했던 모습을 기억하기보다는 아빠가 좋았을 때, 아빠가 정상적이었을 때를 이야기하면서 좋은 기억만 남기려고 했다는 혜연씨.
처음에는 사진도 걸어놓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아빠를 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집안 곳곳 관홍씨 사진을 붙여놨다고합니다.

“처음엔 아빠를 보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아요. 아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끔 유도도 했어요. 조금 있으면 이사를 갈 예정인데 그래서 새로 물건들을 좀 샀더니 둘째가 하는 말이, 우리 아빠 돈 다 쓰는거 아니야 하며 걱정하더라구요.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의 부재를 인식한다는건 그만큼 치유가 많이 된게 아닐까 싶어요. 아빠가 나쁜일을 하다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아빠가 하늘에 있는걸 숨길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애들도 그래서 천천히 좋아진 것 같구요.”


#5. 꽃바다가 꾸는 꿈


혜연씨는 관홍씨가 떠나고 2개월 후쯤 화원에서 나와 작년 4월부터 갈현동에서 <꽃바다>라는 이름으로 꽃집을 시작했습니다.

<꽃바다>라는 이름은 관홍씨가 박주민 의원 캠프에서 일할 때 만난 자원봉사자분 중 한 분이 지어주셨답니다. 지금의 <꽃바다> 온라인 사이트도 이 분께서 관홍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주셨다고 해요. 처음에는 <꽃바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상품 배송만 진행하다가, 생화에 대한 고객불만이 많아서 플로리스트 과정을 직접 배웠고, 오프라인 매장을 낸 것이지요. 매장 구석구석의 인테리어도 자원봉사자분들의 손길이 닿아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혜연씨 가족을 두 번이나 찾아주시고 <꽃바다>를 직접 SNS에 소개해주셔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작년 12월 25일에는 산타할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들고 찾아주셔서 따뜻한 성탄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꽃바다>는 혜연씨와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꽃집을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지 혜연씨에게 물었습니다.

“거창한 꿈을 꾸지는 않아요. 제가 가장 노력할 것은 아이들이 상처를 딛고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아이들과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려하고 같이 운동도 많이 해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보니, 아이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싱싱한 꽃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건 좋은 거 외에는 다른 게 없더라구요. 그리고 고객만족을 위한 사후관리에 더 많이 신경 쓰려고 합니다. <꽃바다>는 애들 모두 다 클 때까지 계속 운영하고 싶습니다.”

 

 


 

끝맺으며... 꽃바다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혜연씨 가족이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꽃바다>를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꽃바다>를 응원하는 분들, 특히 관홍씨가 박주민 의원 캠프에서 자원봉사자 일을 하며 만난 멤버분들의 공이 컸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직접 뵌 적 없는 수많은 분들로부터도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고객분들이 있어요. 저희쪽에 연락하셔서 전국의 소녀상 쪽에 꽃을 보내달라고 하시는 분이 있지요. 전국을 다니시며 소녀상에 헌화하시는 분이신데 어제도 3개 주문하셨어요. 어떤 분은 꽃배달을 해달라고 하셔서 꽃바구니를 다 만들고 주소를 알려달라고 여쭸더니 혜연씨에게 꽃을 드리겠다고 하셨던 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전화해서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같이 울어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저도 잘되서 나중에 다른 분들 도와드리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런 입장이 되기 전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에요”.


지난 6월 17일, 故 김관홍잠수사가 하늘나라로 떠난지 어느덧 2주기가 되었습니다.
관홍씨가 뒷일을 부탁했던 혜연씨와 세아이들은 주변의 관심과 도움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강인하고 꿋꿋한 혜연씨가 아이들을 잘 끌어가며 상처를 딛고 행복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아픈 기억이었지만, 이제는 희망과 행복을 그리고 있는 <꽃바다>를 부탁합니다.


꽃바다가 전하는 리워드

1. 리워드없이 펀딩_꽃바다 후원금으로 사용되며 원하는 후원금액만큼 입력하여 참여가능합니다.

2. 2만원 펀딩 시_틸란 1개



3. 3만원 펀딩시 _꽃바다 꽃다발



4. 5만원 펀딩시 _꽃바다 5만원 상품권 (이메일 발송, 발급일로 부터 1년 유효)



5. 10만원 펀딩시_ 꽃바다 10만원 상품권 (이메일 발송, 발급일로 부터 1년 유효)

상품권은 이메일로 발송되며, 발송된 상품권을 꽃바다 홈페이지에서 구매 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꽃바다 홈페이지 http://fbada.com/

모든 리워드 배송은 9월 10일 ~ 20일 내에 순차적으로 배송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