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Und Gott sprach : Wir müssen reden!)


 

   작품

  

  "지금 누가 누구를 돕고 있는 거지?"

 

  결혼 생활은 실패, 경제는 파산 직전, 직업은 손님 없는 심리 치료사.

  <야콥 야코비>는 어느 날 밤, 코가 깨져 실려 간 응급실에서 서커스 광대 <아벨 바우만>을 만난다.

  정신은 좀 나간 듯하지만 어쩐지 호감이 가는 이 남자, 아무래도 특이한 인격 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신’이라고...

   ‘신’으로부터 상담 신청을 받게 된 야코비는 때마침, 어떤 사건에 휘말려 지금껏 겪지 못했던 당황스러운 경험들을 하게 되고, 상황은 누가 누구를 돕고 있는지 알 수 없게 흘러간다.

  갈수록 의혹이 커져 가는 인물 바우만.

  하지만 그가 보여 주는 다양하고도 신기한 재주는 놀랍기만 한데...

  신의 존재와 의미, 그리고 가족의 사랑...

  심오한 이야기를 전혀 심오하지 않게 풀어내는 유머 넘치는 작가 <한스 라트>의 유쾌한 소설.

 


 

 

 

 

 

 

  작가 소개 

  1965년 출생. 본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인생과 사랑에 쥐어뜯긴 40대 초반 파울의 이야기를 다룬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파울의 이야기를 『결국은 지나가야 한다』무엇을 더 원하나』등  3연작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는 그의 대표작이다.

 



  옮긴이 | 박종대

  성균관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늘 표층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기를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지금껏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나폴레옹 놀이』『유랑극단』『목매달린 여우의 숲』『늦여름』『토마스만 단편선』『위대한 패배자』『주말』, 『귀향』 등 8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REWARD


  이번 펀딩에 참여하시는 분께 배송비 포함하여 11,520원에​ 한스 라트의 대표작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를 보내드립니다.

  책은 4월 초 출간예정으로 현재 북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책 내용 미리 보기

  

   「신이 없더라도 우린 신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볼테르

 

 

#1. 신은 웃긴다

 

 

 전처가 한밤중에 문 앞에 서 있다.

 「어쩐 일이야?」 내가 얼빠진 표정으로 묻는다.

 「당신 도움이 필요해.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겼어.」

 「지금 결혼 생활?」 내가 더듬거리며 혼란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당연히 지금 결혼 생활이지, 또 뭐가 있어?」 그녀가 쌀쌀맞게 대꾸한다.

 「우리 결혼 생활은 석 달 전에 끝났는데, 생길 문제가 뭐가 있어?」

 「새삼 상기시켜 줘서 고맙군.」 내가 힘없이 대답한다.

 「뭐 고마워할 것까지야. 자, 이제 어쩔 거야? 들어가도 되지?」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 곁을 지나 내 쪼그만 아파트 안으로 쪼르르 기어 들어온다.

 「별로 내키지 않는데.」 내가 솔직히 대답한다.

 「왜?」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어깨 너머를 염탐한다. 「안에 다른 여자라도 있어?」

 「다른 여자?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야? 당신 입으로도 방금 말했잖아. 우린 이혼했다고. 그 말은 내가 이제 당신 허락 없이도 여기서 얼마든지 섹스 파티를 열 수 있다는 뜻 아냐?」

 「역시 당신다워! 하나도 안 변했어!」 그녀가 소리친다.

 「나라는 여자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까 아무 여자하고나 달라붙은 모양이지!」

내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나는 피곤하면 아예 싸울 마음이 없다. 엘렌도 그걸 안다. 그래서 우리가 같이 사는 동안에도 그녀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싸움을 걸어 왔다.

 「내일 이야기해.」 내가 애원조로 말한다.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긴다. 순간 나는 그녀가 정말 마음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그러나 그건 실수다. 7년이나 같이 살았으면 이젠 알 법도 한데 나는 여전히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이 아파트가 내 거라는 건 당신도 잘 알지?」 그녀가 야유조로 말한다. 「당신이 한동안 월세 한 푼 낸 적 없는 당신 사무실도 내 거나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이 정도 작은 호의는 기대해도 되지 않아?」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내가 잘 아는 시선이다. 만일 내가 이대로 그녀의 코앞에서 문을 쾅 닫아 버리면 그녀는 분명 전기나 수도를 끊을 것이다. 아니 둘 다 끊어 버릴 인간이다. 어쩌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고 위협할 수도 있다. 엘렌은 상대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다.

결국 나는 내키진 않지만 그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선다.

 「그런 똥 씹은 표정 짓지 마.」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부엌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당신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언제든 돕겠다고 맹세한 사람 아냐?」

 「그런 맹세한 적 없어.」 내가 문을 닫으며 대답한다.

 「심리 치료사가 무슨 의사인 줄 알아? 우린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거 안 해.」

그녀가 부엌 안으로 사라진다. 「화이트 와인 없어?」 그녀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냉장고 문을 열더니 달그락달그락 뒤지기 시작한다.

 「냉동실에 있어.」 나는 부엌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뭐, 냉동실? 병이 터지면 어쩌려고!」

 「그럼 당신이 제때 잘 와줬군. 내 인생의 몇 년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오늘 이렇게 한밤중에 찾아와 내 잠까지 빼앗아 가기는 했지만 최소한 와인 병 터지는 건 막아 주고 있으니까.」

그녀는 자기 잔에 와인을 따르더니 병을 슬쩍 들어 내게 눈짓을 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잔에 와인을 따라 건넨다.

 「자, 이제 무슨 이야기인지 속사포처럼 꺼내 봐.」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뭐, 여기서? 이렇게 코딱지만 한 부엌에서 내 부부 문제를 이야기하라고? 진심이야?」

 「더 좋은 데라도 있어? 하긴 코딱지만 한 욕실과 코딱지만 한 침실이 있긴 하지. 거기라도 좋다면야….」

 「무슨 뜻이야?」 일순간 그녀의 표정이 사납게 변한다.

 「내가 근사한 아파트라도 장만해주길 바랐다는 거야 뭐야? 당신도 알지. 당신 친구 아담 베버크네히트가 어떤 꼴로…」

 「아담 베버크네히트는 내 친구 아냐.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어.」

 「어쨌거나. 그 사람처럼 이혼 후에 다리 밑에서 사는 남자도 있어!」

 「나보다 훨씬 넓은 데 사는구먼. 언젠가 나도 그 사람을 찾아갈지 몰라.」

그녀의 코에서 경멸의 콧바람이 쌕쌕 새어 나온다. 그녀는 와인을 홀짝거리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이거 싸구려지?」

 「2유로 몇 센트쯤 줬을걸.」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입을 대는 순간 알아봤어. 나중에 다리 밑으로 아담을 만나러 갈 때 이런 싸구려도 하나 가져가면 좋겠네.」

 「입맛 버리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 형편이 풀려 근사한 와인 구입하면 바로 연락하지.」

 「야콥, 당신은 정말 뭐가 문제인지 알아?」 그녀가 날을 세운다.

 「물론. 당신을 만난 거지.」그녀는 비꼬는 투의 내 말을 흘려 넘긴다.

 「당신의 문제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거야. 아주 작은 난관도 견뎌 내려고 하지 않아.」

 「지금이라도 내 문제가 뭔지 알게 해줘서 고맙군. 내 문제는 얘기했으니 이제 당신 문제를 얘기해 보지그래.」

 「이건 분명히 해두고 넘어갔으면 해. 난 당신한테 뭐든 거저 받는 건 싫어. 이 상담에 대한 비용도 정상 가격으로 청구해 줬으면 좋겠어. 오케이?」

 「그러지 뭐.」

 「물론 난 그 비용을 당신이 아직 내지 않은 월세에서 깔 테지만. 그러니까…」

 「알았어, 엘렌.」 내가 손을 내젓는다. 「이제 제발 그만하고 용건이나 말해.」

그녀는 와인을 홀짝거리더니 주위를 둘러본다.「이런 코딱지만 한 부엌에서 이야기를 하려니까 정말 입이 안 떨어져.」「엘렌, 지금은 한밤중이야. 내일 얘기하면 안 될까? 내일 첫 시간으로 예약을 잡아 놓을게.약속해. 8시에 사무실에 들러도 돼. 난 상관없어. 오케이?」

그녀는 와인을 조금 들이켜더니 나를 유심히 살펴본다.

 「월세가 밀릴 때 당신 상담소 일이 잘 안 된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파산 직전인 줄은 몰랐어.」

 「그걸 어떻게 알아?」

 「전날 한밤중까지도 다음 날 아침 예약이 비어 있는 심리 치료사라면 경제적으로 갈 데까지 간 거 아냐?」

 「날카로운 추측 고맙군. 이제 당신 이야기나 하시지.」

 「돈이 정말 급하면 괜한 체면 차리지 말고 말해.」

 「나한테 정말 돈을 빌려 주고 싶은 거야, 아니면 내가 궁지에 빠진 걸 즐기고 싶은 거야?」

그녀가 생각에 잠긴다.

 「그만하지, 엘렌. 우리 결혼 계약이란 게 결국 다 죽어 가는 당신 삼촌의 유산을 내게서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부터 당신은 내 재정 문제에 개입할 권리를 잃어버렸어. 영원히. 그래, 나를 계속 당신한테 경제적으로 묶여 있도록 하는 건 좋아. 하지만 그따위 알량한 충고는 생략해 줘.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녀의 입꼬리가 아래로 살짝 처지면서 입술이 팽팽하게 긴장된다. 공격할 채비를 마쳤다는 신호다.

내가 선수를 친다. 「이젠 정말 말 좀 해. 여기 온 이유를. 안 그러면 난 침대로 가버릴 거야.」

 

그때 초인종이 울린다.

 「그 사람이야!」 엘렌이 화급히 말한다.

 「누구?」

 「아르민. 내 남편. 당신이 저 사람한테 알아듣게 설명 좀 해줘. 지금 질투심으로 제정신이 아냐.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질 않아.」

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이번에는 좀 더 길게.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니까 당신은 저 친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군. 나보고 대신 싸우라고 일부러 여기로 끌어들인 거야?」

 「당연하지! 심리 치료사가 하는 일이 그런 거 아냐?

전처가 난데없이 한밤중에 들이닥쳐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부부 문제에 나를 끌어들이고 있는 이 상황을 납득하려면 나는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

 「알았어. 저 친구 설마 마약을 한 건 아니지?」 내가 묻는다. 「아님 술에 취했다거나?」

그녀는 고개를 흔든다. 다시 초인종이 울린다.

 「잠깐만요, 갑니다!」 나는 문 쪽으로 소리를 지르고는 다시 엘렌에게 고개를 돌린다.

 「내가 저 친구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게 또 뭐 있지?」

 「남편은 권투 선수야.」

 「권투 선수?」

 「그래, 프로 복서.」

 「그러니까 사람을 전문적으로 때려눕히는 인간이 지금 질투에 눈이 멀어 내 집 앞에 있다는 거야? 당신 미쳤어? 저런 인간을 이리로 끌어들이게?」

엘렌은 어깨를 으쓱한다.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어쩔 수…」

 「무슨 체급이야?」

 「페더급.」 엘렌이 대답한다.

나는 문구멍으로 조심스레 밖을 살핀다. 어스름한 불빛 속에 내 키 어깨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빼빼한 남자가 하나 서 있다. 약간 화가 난 것 같긴 해도 외견상으로는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살짝 마음이 놓인다.

 

 「지금 나가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열쇠를 돌린다. 그와 동시에 문이 덜컹 열리더니 아르민이 총알처럼 뛰어들어 온다. 그가 언제 주먹을 치켜들었는지는 미처 보지 못했다. 사실 그의 주먹이 내 코 몇 센티미터 앞에 다가온 순간에야 나는 그가 나를 때려 부수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물론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뿌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굴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 커다란 망치로 내 코를 얼굴 속에 박아 넣은 느낌이다.

나는 물 먹은 자루처럼 풀썩 쓰러지는 그 짧은 시간에 내 직업을 때려치우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건대 그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상담소에 손님이 없어 파리를 날리는 건 슬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으로선 상담소 문을 닫는 건 시간 문제다. 게다가 방금 일어난 일에서 알 수 있듯이 이렇게 사람을 볼 줄 모르는 부실한 인간 이해 능력으로는 결코 좋은 심리학자가 될 수 없다. 나는 쿵 소리와 함께 닳고 닳은 카펫 위로 쓰러지는 순간, 내 인생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나는 이 직업을 좋아한다. 다른 일은 할 줄 아는 게 없다. 이런 생각을 끝으로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의식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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