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1!
회화나무로 만든 뒤주였다. 윤 5월의 뙤약볕은 천진했다. 28살, 한 남자가 갇혀있는 뒤주로 무심한 태양빛이 쏟아졌다. 검붉은 뒤주는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뒤주 안은 밝지 않았다. 왕의 아들은 몸을 뒤틀 수 없다. 고개를 들 수도 없다. 혀를 깨물고 싶도록 숨이 막혔다. 뒤주 밖이 환해질수록, 뒤주 속은 어두웠다. 타는 듯했다. 남자의 귀에 아비가 직접 뒤주에 못을 때리고, 자물쇠를 채웠던 소리가 쟁쟁하게 울렸다.
사람들은 남자를 정신병자라고 했다. 남자는 뒤주 안에서 사무치는 비명을 질렀다.
11살 아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 늙은 아비의 귀에도 들리도록 남자는 괴이한 음성으로 발악했다.
귀가 달린 사람들은 그 소리에 짐승을 느꼈다. 정신병자는 8일 만에 아비에 의해 숨을 놓았다.
창경궁 문정전 앞뜰에 300년 된 회화나무와 선인문 안쪽 400년 된 회화나무는, 회화나무로 만든 뒤주의
비명을 들었다. 뒤주의 절규를 듣고 자란 나무들이었다. 나무는 공명2(共鳴)했다.
나무의 어느 뼈마디, 옹이로 남겨졌다.
그가 죽은 지 250여 년이 지나면서 학자들이 입을 열었다.
당파 싸움이 그를 죽였다고. 뒤주 남자의 정신병 때문이 아니라고...
“뭐가 들려요?”
한 여자가 뒤주에 귀를 바짝 대고 있었다. 폴더 폰처럼 엉거주춤 허리를 꺾고 있는 모양새가 우스웠다. 화성행궁에 관람을 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뒤주 속을 들여다본다. 그녀처럼 250여 년 전의 비명 소리를 듣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기에게 한 얘기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그녀와 나 둘뿐이었다.
“저 말인가요?”
그녀는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뙤약볕은 그녀와 나를 태워죽일 것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처음 본 그녀에게 기시감이 느껴졌다. 언젠가 말을 나누었고, 또 오래전에 지긋지긋하게 싸웠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 햇볕에 물든 그녀는 칙칙한 뒤주와 잘 어울렸다. 그대로 뒤주에 새겨져도 좋을 그림이었다.
“들어가 보실래요?”
그녀가 당돌한 눈빛으로 말했다. 잠깐 당황했지만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음울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뒤주 그리고 낯익은 그녀. 나는 받침대를 밟고 뒤주 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갔다. 그녀 또한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망설이지 않고 뚜껑을 닫았다. 뚜껑은 칠이 바래고 너덜하게 낡아 있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죽음을 맛보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의 손때 때문이었다.
뒤주 안은 생각보다 짙은 암흑이었다. 어렸을 적, 갇혔던 그 공간이었다. 날카롭게 질식의 공포가 몰려왔다.
어둠은 흔했다. 하루에도 한 번 어둠은 찾아오지만, 어둠에도 색깔이 있었다. 특별한 색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이불로 어린 나를 꽁꽁 싸매고 뒤흔들었다. 이대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던 공포. 이불 밖으로 사력을 다해 빠져나오면 젊은 엄마는 다시 아이를 캄캄한 이불로 뒤집어씌우고 답삭 들어 흔들었다. 아이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가위눌린 막막함. 튀어나오는 단말마의 비명. 살려달라는 무기력한 울음소리. 그때 보았던 이불 속 색깔은 어둠이 아니었다. 젖을 주었던 엄마라는 이름과 나를 죽이려 했던 것 같던 한 여자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3의 색깔. 그 색깔은 싸늘했다. 검푸른 바닷물이었다. 해석할 수 없는 심연의 색이었다.
똑․똑․똑
그녀가 두드렸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때, 이불 속 아이가 보았던 심연의 색으로 비명을 질렀다.
바깥은 조용했다. 그녀는 귀를 바짝 대고 250여 년 전의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정신병으로 몰렸던 한 남자의 비명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뚜껑을 밀어젖혔다. 낡은 뒤주의 속살로 햇살이 쏟아졌다.
#1. 소나기 젖은 햇살
수원 행궁에서 멀지 않은 융건릉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융건릉은 뒤주 속에서 굶어 죽은 남자와 그 아비의 절규를 똑똑히 들었던 아들이, 부인들과 함께 묻혀있는 공간이다. 관광객들은 제향을 지내는 정자각이나 용이 품고 있는 여의주에 해당한다는 연못, 곤신지에 무리 지어 있었다. 정자각 옆쪽에 위치한 비각 안의 비문에는 움푹 팬 자국들이 있었다. 비문의 전서체 글자보다 그 자국이 더 궁금했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휴대폰이 잡히지 않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중학생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아이는 그 자국이 6․25 전쟁 때 생긴 총알 자국이라고 주장했고, 나는 그 바쁜 인민군과 국방군이 숨을 데라고는 왕 무덤밖에 없는 이곳까지 떼거리로 몰려와서, 총싸움했을 리 없다고 강변했다. 정신병자로 몰렸던 남자의 유골이라도 탈환하는 쪽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면 또 모를까. 중학생 아이는 씩씩댔고, 나는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이의 말이 몽땅 맞는 것으로 해주는 대신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이는 맥 빠진 손으로 마지못해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분실 중인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리 오스카의 비포 더 레인이 끝나갈 즈음, 여자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지금 식사 중이거든요. 이따가 전화할게요.’라는 일방적인 말과 함께 통화가 툭 끊겼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의 주인인 중학생을 졸졸 쫓아 다녔다. 휴대폰을 주운 여자가, 식사를 다 마치고 나를 다시 호출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은 친구들과 다방구를 하느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다. 덩달아 술래도 아닌 나도 중학생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그 넓은 왕의 무덤 주위를 뛰어야 했다. 좁은 뒤주에서 죽은 남자가 새삼 지나치게 드넓은 곳에 묻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이 술래에게 붙들려 홍살문에 붙어있을 때, 나는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홍살문은 충절과 정절을 지킨 열녀에게 하사되는 붉은 칠을 한 문이다. 다시 다방구라는 외침이 들렸다. 술래라는 저승사자에게 붙들려 죽은 채로 홍살문에 속박되어 있으면, 자유로운 몸을 가진 아이가 다방구라는 외침과 함께, 죽은 아이의 손을 마주쳐주면 죽은 아이는 부활했다. 구원의 터치였다. 중학생이 살아나려 했다. 다행히 중학생이 막 풀려날 즈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중학생은 귀찮다는 듯 휴대폰을 나에게 던져주고는 저승사자를 피해 멀찌감치 달아났다.
“여보세요?”
“뒤주에 왜 휴대폰은 떨어뜨려 놓고 간 거죠?”
나를 뒤주에 빠트렸던 그녀의 목소리였다.
홍살문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저만치서 휴대폰을 돌려주려고 오는 그녀가 보였다. 그런데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뒤로, 소나기가 맹렬하게 뒤쫓아 왔다. 순식간이었다. 마른 땅을 적시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소나기의 기세는 수십만 대군이 쏜살같이 말을 달리는 형상이었다. 그녀가 뛰었다. 그녀가 소나기를 몰고 오고 있었다. 몇 걸음 뛰지 않아, 소나기가 그녀의 머리를 덮쳤다. 그녀는 한 손을 들어 머리 위에 우산처럼 받치고, 삐치기 좋아하는 초등학생처럼 한쪽 눈을 찡그리며 다가왔다. 나와의 거리를 좁히느라 터덜터덜 뛰고 걷기를 반복했다. 나는 느린 화면으로 다가오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소나기 속의 그녀는 싱싱한 소나기였다. 닮았다. 청바지에 자주색 면티를 입은 그녀가 뛸 때마다 웨이브 진 긴 머리가 출렁였다. 기세 좋은 소나기는 여우비였다. 비가 오는 중에도 햇살은 여전히 빛났다. 햇살에 반사된 그녀의 머리카락은 밝은 갈색이었다. 기묘한 풍경이었다. 손바닥 우산을 쓰고, 소나기 젖은 햇살에 반사된 갈색의 머리카락을 나풀대며, 나의 휴대폰을 찾아주기 위해 애를 쓰고 뛰어오는 한 여자의 스케치 풍경...
소나기를 거느리고 온 그녀가 붉은 칠을 한 홍살문에 다다랐을 무렵, 우리는 어디에도 비를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급하게 눈에 들어온 곳이 정자각 아래, 작은 수라간 처마 밑이었다. 나와 그녀는 인사치레를 할 겨를도 없이 처마 밑까지 달려야 했다. 비 젖은 잔디 위를 하이힐을 신고 뛰느라 그녀는 갸우뚱, 몇 번을 넘어질 뻔했다. 그녀와 수라간 처마 밑에서 쌕쌕 밭은 숨을 내쉬었다. 여우비가 오기 전까지 왕릉에서 내가 본 것은 펑퍼짐한 아낙의 뱃살 같은, 늘어진 엉덩이의 곡선 같은 무덤의 나른함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몰고 온 햇살 속의 소나기는 어느새 왕들의 무덤을 싱그럽게 바꿔놓았다.
“뒤주 속이…무서워요?…소리만 지르고 도망치듯…가버리게….”
숨을 고르느라 그녀의 말이 자주 끊겼다.
“그 비명…당신 들으라고 지른 건 아니고….”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갈색 머리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기 있는 엉덩이 곡선이 오히려 왕의 무덤답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의식하고, 빤히 마주 쳐다보았다. 무참해진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수라간의 닫힌 나무 문틈 사이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어느새 수라간 안에도 비 맞은 햇살이 갈래지어 들어와 있었다.
***
그곳은 부엌이었다. 밥이 끓고 있었다. 솥단지 뚜껑이 열기에 못 이겨 들썩였다. 바깥에서는 엄마와 주인집 아줌마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서툴게 빗자루 손잡이로 걸어 잠가 놓은 나무 문짝 사이로 햇살이 미어져 들어왔다. 햇살은 부엌 흙바닥에 서너 개의 금을 그었다. 부뚜막에 걸터앉은, 치마가 말려 올라간 열여덟 춘자의 허벅지 맨살 위로도 햇살이 그어졌다. 춘자의 젖가슴이 몰캉몰캉 부챗살처럼 움츠러들었다 활짝 펴지기를 반복했다. 어떤 때는 위로 아래로 덜커덩거렸다. 그녀의 숨이 칙칙~ 치치익~ 밥물 끓는 소리를 냈다.
만 ․ 져 ․ 봐
춘자의 달뜬 목소리였다. 7살, 나의 움켜쥔 손은 펴질 줄 몰랐다. 춘자의 목소리는 명령도, 애원도 아니었다. 밥물 끓는 솥단지처럼 달아올랐을 뿐…. 열여덟 어른의 몸이 끓는 것을 난생 처음 보았다. 은밀했지만 두렵지 않았다. 단지 멈출 수 없는 기차의 지붕에 춘자와 함께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무엇인가 위험하고, 마땅히 발을 디디고 내릴 수도 없이 달려야만 하는 공간.
“손을 펴 봐….”
부끄러움이 많은 춘자였지만 목소리는 달큼했다. 하지만 춘자의 채근에도 나는 주먹을 펴지 않았다. 내 주먹은 그녀의 다리 사이에 꽉 끼어있었다. 나의 관심은 그녀의 칙칙폭폭 울어대는 성기가 아니었다. 혹시 그녀의 다리 조임으로 인해 주먹이 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춘자는 그 집 가사도우미의 딸이었다. 엄마가 아플 때는 대신 춘자가 와서 일하고는 했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춘자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믿음직했고 순진했다. 가끔 앞 집 사는 내게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주기도 했고, 호빵을 쪄 주기도 했다. 본채 바깥에 있던 그 집의 부엌은 춘자만 있으면 맛있는 것이 불쑥 나오는 곳이었고, 춘자로 인해 가슴이 쿵쿵 뛰는 곳이었다.
“정말 주먹 안 펼 거야?”
아이들이 장난을 쳐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모두 받아주었던 막내 이모 같았던 춘자. 춘자가 기쁘면 나도 기뻤다. 사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들어 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치마 속, 물기 어린 갯바위 사이에 따개비처럼 붙어있던 내 주먹을 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밀크 캬라멜 때문이었다. 내 주먹 속의 껍질 벗겨진 캬라멜. 춘자는 밥물 끓는 소리로 보챘고, 주먹 속에 캬라멜은 찐득하게 녹아만 가고, 나는 조바심이 났다. 캬라멜이 춘자의 성기에 깊숙이 닿을까 봐 온통 신경이 곤두섰다. 물 샐 틈 없이 주먹을 일그러질 정도로 꼭 쥐었다. 밀크 캬라멜에 오줌이 묻어서는 안 된다. 만약 오줌이 묻는다고 해도 귀한 캬라멜을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주먹에 너무 힘을 주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칙칙폭폭 기적을 울리고 있는 춘자는 코맹맹이 소리를 냈고, 갈래진 햇살 사이로 칙 치익~ 밥물 끓는 수증기는 폭폭 피어오르고, 어느새 누군가가 부엌 문짝을 쾅쾅 두드렸다. 부엌 안은 온통 찌그덕 찌그덕 씨근덕 씨근덕이었다.
춘자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었다. 이미 멈출 수 없었다. 내 따개비 주먹을 자신의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아쉬운 대로 갈라진 갯바위 사이에 대고 주먹 파도를 만들어 물결치게 했다. 뜨거워진 손안의 캬라멜은 반 이상이 녹아내렸고, 춘자의 갯바위도 흐물흐물 흘러내렸다. 춘자의 넘어가는 흰자위처럼 내 머릿속도 텅 비었고, 햇살은 살들 위에서 빛났다.
춘자는 그날 끝내 밥을 태웠다. 밥 탄 냄새를 맡으며 나는 춘자를 걱정했고, 치마를 내리고 열기가 가신 춘자는 쑥스러워 나를 마주 보지도 못했다.
날 버리면 그대가 손해 더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