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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우리 선조의 빛나는 시절을 소개했던 것처럼,
이제 누군가 우리의 대중문화 소개기를 낼 때가 되지 않았는가?
#1. 유년기의 끝
아버지는 불문과를 가고 싶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당신이 어린 시절부터 이미 가세가 바닥이었던지라, 경영학과(당시에는 상과대학)를 가야만 했다고 한다. 문학을 하면, 예술을 하면 패가망신이라는 생각이 상식이었을 1950 년대였으니까 당연한 귀결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 년대에도 그런 생각이 다수였으니 과거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하고 싶었던 문학대신 아버지는 평생을 마케팅을 연구하고, 강의하시면서 인생을 보내셨다. 그리고 언제나 문화예술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고 즐기셨다. 국문과를 나오신 어머니도 그러셨다. 집에는 많은 책과 음반이 있었고, 영화도 자주 보러갔다. 고상하게 예술을 음미하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마음대로 즐기는 환경이었다.
모두 대학을 나온 4 남매의 막내였고, 부모님이 주택 대출금을 모두 갚은것이 내가 대학 때였으니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윳돈을 건물이나 땅에 투자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퇴직하신 후 남은 것은 집 한 채와 연금이었다. 대신 식(食)생활과 문화생활에는 아낌이 없었다.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 아동문학전집, 백과사전, 세계의 미술관 등 온갖 전집류가 있었고 어머니와 두 명의 누이가 보던 잡지와 책들도 많았다. 내 돈으로 사기만 한다면, 새로운 책을 사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고 추궁도 없었던 집이었다.
세계영화음악 전집이라는 제목의 LP 세트도 있었다.
LP 크기의 거대한 소개 책자에는 한 장마다 큰 사진과 함께 영화의 설명이 실려 있었다. <엠마누엘 부인>이란 영화를 처음 안 곳도 그 소개 책자였다. 아버지는 전축과 카세트 데크, 8트랙 등 오디오와 폴라로이드 카메라, 비디오카메라, 비디오데크 등등 새로운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구입하시는, 지금 말로는 소위 얼리어답터였다. 하지만 하나의 기기를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기보다는 신제품이 나오면 사고, 한참 뒤 새로운 뭔가가 등장하면 다시 사고 등등 그저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을 뿐 마니아는 아니었다. 끊임없는 업그레이드를 했던 것은 컴퓨터 말고는 거의 없었다. 대신 집에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늘 가득했다. 문화적 환경으로는 크게 부족한 것이 없었다.
영화관에 갔던 기억 중에 무엇이 처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는 종암극장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동네에 있던 재개봉관들도 으리으리했다. 크기로만 본다면 개봉관에 뒤지지 않았다. 종암극장을 들어가면 가운데 분수대가 있는 넓은 로비가 있었다. 구석에는 오줌싸개 동상도 있었고. 로비의 양쪽으로는 2층으로 올라가는 대리석(?) 계단이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당당하게 내려올 것만 같은 계단이...
컴컴한 영화관 안에서 자다 깨면 거대한 스크린 가득히 그들이 있었다. <벤허>에서 마차 경주 장면이나 노를 젓는 장면인 것 같기도 하다. 무협영화인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는 무협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다. 197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웅장한 스펙터클이나 <더티 해리> 류의 액션영화를 좋아하셨다. 동네 극장은 등급 그런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으니 온 가족이 영화를 보러 가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에 아이들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다 잠들고, 깨어나면 다시 보고. <목 없는 미녀>에서 찬장을 열면 머리가 떼굴떼굴 굴러 나오는 장면 같은 것도 기억난다. 공포영화를 보다 무서워지면 극장 로비에서 뛰어놀다가 어느 정도 잊혀지면 다시 들어갔다. 그 시절의 극장은 아늑했고, 일상의 한 영역이면서도 어딘가 신비롭고 유쾌했다.
일본에 가미카쿠시(神隠し)라는 말이 있다.
갑자기 아이가 사라지거나 하면 신이 데려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 신은 우리들의 세상에 걸쳐 있거나 이면에 있는 수많은 ‘다른 존재’를 말한다. 간혹 아이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럼 그것이야말로 가미카쿠시의 증거였다. 아이는 잠시 헤매거나 다른 곳을 본 것이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극장도 그랬다. 그 안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과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어둡고 넓은 공간에서 모두가 커다란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가상의 존재들을 함께 보고 있다. 현실보다도 더 아름답고 황홀하고, 때로 폭력적인 다른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부터 극장의 기억은 포근했다.
자다가 깨어났을 때, 펼쳐지는 눈앞의 스크린에 늘 감동했다. 영화라는 매체는 즐겁고, 재미있고, 따뜻하고, 친숙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어머니, 누나와 형과 함께 개봉관을 가게 되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국제극장에서 본 <타워링>과 허리우드 극장에서 본 <포세이돈 어드벤처> 등은 신문광고나 동네 전신주와 담벼락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보고 개봉관까지 찾아갔다. 그 시절에는 광화문과 종로, 명동등을 시내라고 불렀다. 내가 살고있는 동네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볼 것도 먹을 것도 달랐고, 오가는 사람들의 패션도 달랐고 동네와는 다른 번화한 거리였다. 우리 집에서 영화는 대단히 중요한 문화였다. 영화는 나쁜 것이나 금지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온 가족이 동참하는 즐거운 문화가 영화였다.
부모님은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걸 가풍이라고 해야 할까? 큰 누나, 작은 누나, 형 그리고 나. 손위로 세 명이 있었지만 자라면서 그들에게 뭔가를 강요는 커녕 특별한 조언이나 권유를 받은적도 없다. 영화를 ‘함께’ 보러 간 적은 있지만 어떤 영화는 보고, 어떤 것은 보지 말라는 말 같은 건 없었다. 영화도, 책도, 음악도 특별하게 권하지 않았다. 책은 많았다. 이미 누나와 형이 보던,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을 위해 사 둔 전집류가 한껏 있었다. 그 중에서 골라보기만 하면 됐다. 이걸 읽어라, 저걸 읽어라, 라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책을 읽고 있었다. 보고보고 또 봐서 더 이상 볼 책이 없으면 책꽂이에 가서 가장 기억이 덜 나는 책을 골라 다시 읽었다. 내가 원했던 ‘아이디어회관 SF 문고’나 ‘제3 한국문학’이나 ‘우리 시대 우리 문학’ 같은 전집도 사 주었다. 동서추리문고는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씩 사서 읽었고. 그리고 내가 산 어떤 책을 책꽂이에 꽂아 두더라도 뭐라 하신 적은 없었다. 추리소설이건, SF건, 조금은 야한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나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이라 해도.
뭔가를 제시해주고, 삶의 지도 같은 걸 알려주는 스승 같은 이가 있었으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가끔 들기는 한다. 하지만 집에는 거의 모든 것이 있었다. 자라면서 클래식이나 미술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은 있었다. ‘세계의 미술관’이라는 제목의 전집은 르부르, 대영제국, 우피치 등 세계 각국의 미술관에 있는 조각과 그림 등을 올 컬러의 대형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크게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들여다보았다. 대단히 인상적인 그림들도 있었다. 히에로니무슈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이라던가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라던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같은 그림들. 그러고 보니 내 기억에 남은 그림들은 대개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당시에는 화가와 그림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있다가 나이가 들어 기억에 새겨진 그림들을 다시 보았을 때 제목을 확인하며 다시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바하와 베토벤과 모차르트 등등 클래식 음반도 집에 한가득 있었다. 내가 찾아 듣지는 않았지만 다른 가족이 듣고 있으면 쉽게 옆에서 들을 수 있었다. 내 눈앞에 그것들이 있었고, 내가 원했다면 그것들을 집어 들고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내 취향이 아니었거나, 성장하면서 내 눈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뿐이다. 그 선택이나, 혹은 운명에 일체 아쉬움은 없다. 지금 내가 보고 듣고,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게 국민(초등)학교 4학년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자주 주사를 부리는 것 정도가 고민이었을 뿐 평탄했고, 조용했다. 그대로 간다면 아마도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을 다니며 잘 살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사실, 그 시절에도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4학년 때까지도 하고 싶은 것은 딱히 없었다. 장래 희망 같은 것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평화로운 유년을 보냈다. 문화적으로 풍족하게...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변했다.
나의 유년은 지극히 폭력적으로, 한순간에 닫혀 버렸다.
#2. 스트레인지 데이즈 - 아무것도 없는 곳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그랬다. 여행을 가는 풍경을 찍은 스틸 사진들이 이어진다. 츠네오가 밝은 목소리로 수족관, 바다, 조개 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츠네오가 말하는 조제, 츠네오가 만났던 조제. 오래 전, 츠네오는 조제를 떠났다. 그리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제목이 나오고 음악이 흐른다. K의 그림이 오프닝 크레딧을 장식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츠네오가 회상했던 조제와의 여행. 수족관을 갔지만 휴일이라 문을 닫았던 여행은 영화에서 거의 마지막부분에 나온다. 보지 못한 수족관대신 조제와 츠네오는 러브호텔의, 바다 속처럼 꾸며놓은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곳에서 조제는 말한다.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 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본 것은 한참 나이가 든 30대 후반이었다.
그런데도 꽂혔다. 조제라는 캐릭터를, 숨을 멈춘 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 그녀를 키워준 할머니는 조제가 ‘망가졌다’고 말한다. 망가진 조제를 보여주기 싫어서, 사람과 만나게 하기 싫어서, 아무도 없는 새벽에만 조제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와 세상을 보여준다. 조제가 만난 진짜 세상은 그것뿐이었다. 할머니가 주워온 책만으로 세상을 배웠던 조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함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보러 갈 거라고 말하는 조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면서 ‘아무 것도 없었던 곳’을 떠올렸다. 오래 전, 내가 있었던 곳.
운명이란 아마도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국민학교 5학년의 언젠가부터 말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리며 간신히 터져 나오거나 아예 얼굴만 붉히며 말하지 못했다. 심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것도 힘들었다. 원하는 물건이 눈에 띄면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저거요’라고 겨우 말할수는 있었지만, 보이지 않으면 길게 말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겨우 더듬거리며 말하고 물건을 받아 나오며, 죽고 싶었다. 학교에서 선생이 질문을 해도 답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지않고 있으면 ‘몰라?’라는 질문이 날아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맞는게 나았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유는 몰랐다. 전학을 간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적응을 잘 하지 못해서. 하지만 전학은 이미 3학년 때에도 한 번 했었다. 종암동에서 처음 봉천동으로 이사를 가서 봉천국민학교에 전학을 갔다. 전학간지 일 주 만에 반장 선거를 했는데 부반장으로 뽑혔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때의 나는 무척이나 자신만만했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도 별로 주눅들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이나 필요로 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였던 것 같다. 2년 뒤, 봉천동에서 다시 버스로 두어 정거장 정도 되는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바로 옆에 원당국민학교가 있었다. 다시 전학을 가지 않는다면 버스로 통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전학을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어쩌면 5학년의 담임 때문일 수도 있다.
미술을 전공했던 담임은 모두에게 미술을 강요했다.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대회에서 전체상을 받기 위해서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들을 수업이 끝난 후에 남아 그리게 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이미 1학기가 한참 시작된 후에 갔기 때문에, 나는 그가 가르친 미술의 기본을 알지 못했다. 구도를 어떻게 잡는지, 채색을 어떻게 하는지 등등. 그래서 수업이 끝난 후에 남아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학생들 틈에 끼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라 보기는 애매하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 그림을 잘 그리게 되어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 놓기도 했으니까. 비록 그 뒤에는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말을 더듬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획일적인 분위기나 강압적인 명령을 싫어하는 성향은 아마도 그 때 형성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 규범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모두에게 집요하게 강요하는 사회... 집단은 싫다, 여전히.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드나들었다.
병원에도 가 봤고, 웅변학원도 다녀봤고, 복식호흡을 하는 학원도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고, 나는 가게에서 물건 하나 제대로 못 사는 인간이 되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열등한 인간이 되었다. 이 세상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공부를 못한다거나 키가 작다거나 여러 가지 단점이 있는 사람이라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잃어버린 나는, 그 쉬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바닥에 있는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지금 생각하는 것은 책임을 누군가에게, 바깥으로 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오로지 나의 책임이었다.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이건 간에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내가 잘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누가 나에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건 오로지 내 잘못이었고, 나의 능력 부족이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지금도 역시.
혼란스러웠다.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지상에서 벼랑 끝 아래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다들 저 위에 있는데 나는 혼자 바닥에 있었다. 조제의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망가져버린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한참 나이가 든 후에는, 츠네오를 만난 조제처럼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라고 말할수도 있게 되었다. 원작의 조제는 츠네오와 헤어진 이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그 다음 이야기를 보여준다. 조제는 살아간다.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여전히 조제는 고장난 상태 그대로이지만, 살아간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상을 영위한다. 그럴 수 있다. 츠네오를 만난 조제처럼, 호랑이를 보고 난 후에는.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저 암흑뿐이었다. 비조차 오지않는 컴컴한 바다 속. 거기에 어느정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카오스 자체였다.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우왕좌왕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3. 가상의 세계에 빠지다 - 아이디어 회관 SF문고
‘킬링 타임’이란 단어는 약간 비하하는 의미다.
아, 그거 킬링 타임용이야. 별다른 의미나 감동도 없고, 그저 시간을 때우는 의미밖에 없다는 정도. 나는 킬링 타임을 너무나 좋아한다. 영화나 소설이나, 그것을 보는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푹 빠질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보고나서 아무 의미 없어도 좋다. 배우는 것도, 감동도 없어도 좋다. 그 시간만이라도 다른 세계에 가 있을 수 있다면.
이를테면 이런 거다.
씨네21 초창기에는 가뜩이나 기자가 적었는데, 도중에 누가 그만두면 바로 충원이 되지도 않았다. 주간지를 기자 5, 6 명이 만들어야 할 때도 있었다. 일, 일, 일이었다. 몸도 머리도 완전히 방전 상태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잠도 오지 않는다. 머리가 멍한 상태로, 하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그럴 때 TV를 틀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봤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바보짓에, 헛소동에 깔깔 웃기를 원했다. 그 시간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세상의 시름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 다른 세계가.
정확하게 몇 학년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국민(초등)학교 4학년이나 5학년이었을 것이다. 어린이 날이었고, 노량진의 약간 큰 서점에 가서 선물로 아이디어회관 SF문고 20권인가, 30권인가를 한꺼번에 샀다. 자료를 찾아보니 아이디어회관 SF문고가 처음 발간된 것은 1971년이라고 하는데, 내가 만난 것은 76년이나 77년이었을 것이다. 한국작가의 것도 포함하여 총 60권이었는데, 처음 샀을 때는 다 나오지도 않았다.
SF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한 휴고 건즈백의 <27세기의 발명왕>이 1권이었고 H.G. 웰즈의 <우주전쟁>, 마크 트웨인의 <아서왕을 만난 사람>, 아서 코난 도일의 <공룡 세계의 탐험>, 에드가 버로우즈의 <화성의 존 카터>, 줄 베르느의 <지저 탐험>, 아이작 아시모프의 <강철도시>, 로버트 하인라인의 <초인부대>, 아서 클라크의 <우주 스테이션> 등 SF의 고전부터 <비글호의 모험>(영화 <에이리언>의 원작인), <불사판매주식회사>, <추락한 달>, <걷는 식물 트리피드>, <백설의 공포>, <시간초특급>, <합성인간> 등등 상상할 수 있는,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온갖 이야기들을 아이디어회관 SF문고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화성에 가서 영웅이 되고, 살아 있는 공룡을 만나고, 우주나 지저 세계 등 낯선 곳을 탐험하고, 초인들이 대결을 벌이거나 로봇과 친구가 되고, 자연의 일부인 눈이나 식물과 싸우기도 하는 등등.
나중에 듣기로는 일본에서 나온 어린이용 SF 문고의 일부를 가져와서 삽화까지 그대로 실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서로 관계없는 문고였기 때문에 표지와 내지의 삽화는 두 가지 그림체가 뒤섞여 있었다. 한국 작가들의 SF는 국내 삽화가가 그렸기에 또 달랐다. 상관없었다. 아동용으로 축약된 버전이었고, 일본어로 번역된 걸 다시 한국어로 번역된 중역이었지만 그 역시 상관없었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거대한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었다.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쏟아지는 유성을 보며 소원을 빌고, 건배를 했다. 다음 날, 유성을 눈으로 본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었다. 일부 사람들만이 멀쩡했다. 실연을 당해 낮부터 폭음을 하고 곯아떨어졌던 사람, 일에 몰두하여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 등등. 소란이 일어나고, 우리가 알던 세상이 끝나버린다. 그리고 눈먼 자들은 앞이 보이는 사람을 붙잡아 묶어두고 노예처럼 부린다. 그렇게 문명이 망하고, 유전공학으로 탄생한 식인 식물인 트리피드가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혹성탈출> <매드 맥스2> 같은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린 영화들을 만나기 전, 내가 구체적으로 처음 만난 아포칼립스의 세계는 <걷는 식물 트리피드>였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모든 것이 변해버린 세계, 아예 시작과 근본부터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은 경이로웠다. SF에서 가장 중요한 경이로움이다. 아이디어회관의 SF를 읽으면서, 그런 경이로움을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열등감 때문일 수도 있다. 나에게 현실의 세계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시공간이었다. 이미 난 패배자였고 밑바닥에 있었다. 무엇인가 송두리째 변하지 않는 한, 모든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나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세계를 간절하게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가 말하듯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라고. 하지만 다 함께 죽어버리자는 저주는 단지 中 2 병의 한숨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절규>에는, 정신병원에 갇혀 죽어간 여인의 귀신이 나온다. 그녀는 매일같이 창밖으로, 배를 타고 도심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모두에게, 세상에게 버림받고 죽었다. 그래서 죽은 그녀는 저주를 퍼붓는다. 나는 죽었으니, 당신들도 죽어주세요, 라고. 이 세계의 법칙 안에서 존재하는 한, 말을 더듬는 나만이 아니라 잊혀진 모든 존재들에게는 역전의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완성된 시스템이 구축된 세상은 너무 견고하다.
그래서 헛된 꿈을 꾸기도 한다. 허황되지만 간절한 꿈을.
그러나 단지 그것뿐이라면 가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이유로는 너무 초라하다. 그건 마음을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역시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가능한 일이다. 현실을 잊기 위해서 도망치는 것. 가끔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생의 규칙이 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상의 세계에 몰두하게 된 것은, 단지 패배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즈음에 만났던 영화들로는 <킹콩> <신밧드의 모험-호랑이 눈깔> <슈퍼맨> 등이 있었다. 대부분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국제극장에서 보았고, 볼 때마다 빨려들어갔다. 그건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스펙터클은 어떤 꿈보다도 황홀했다. 극장을 나왔을 때, 꿈에서 깨어나 만나는 현실이 슬프기는커녕 그 꿈을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눈앞의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상을 즐기면서 걸어갈 수 있었다.
뭐 어떤가. 그것만으로라도 잠시 행복해지면 되는 것을.
#4. 강한 것은 아름답다 - 이소룡, 성룡 그리고 이연걸
유하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소년은 쌍절곤을 돌린다.
강남이 막 개발되기 시작할 즈음, 그 시절의 학교는 폭력이 지배했다. 단지 한 두명의 폭력이 아니라 선도부와 선생까지 결탁하여 구조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다. 그 때 개인이 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폭력이다. 그의 영웅은 이소룡이다. 이소룡의 영화에 반하고, 그의 사진을 방에 붙여 두고, 쌍절곤을 배우고 학교에도 가지고 간다. 그것이야말로 그를 지켜주는 유일한 신앙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짜릿하다. 욕을 퍼부어대며 학교의 유리창을 깨부수는 장면은, 그 시절 학교를 다녔던 학생이라면 한번쯤은 상상했을 판타지다. 선생에게 두들겨 맞는 건 일상이었던 시절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학원을 다니던 주인공은 친구를 만난다. 함께 이소룡에 열광했던 그는 이미 <취권>의 성룡에 푹 빠져 있다. 비극적인 영웅 이소룡에서 코믹 쿵푸의 달인 성룡으로 시대가 바뀐 것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나 역시 성룡 세대였다.
이소룡의 <용쟁호투>가 국내에 개봉한 것은 1973년이었다.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에는 너무 어렸다. 이소룡의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은 1978년 <사망유희>였다. 스카라 극장에서,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이소룡을 만났다. TV에서는 이미 보았던 이소룡이지만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이소룡은 상상 이상으로 멋있었다. 하지만 빠져들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소룡은 물론이고 이전의 장철과 호금전의 무협영화 역시 나에게는 ‘당대’가 아니었다. <사망유희>의 이소룡이 멋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바로 다음 해인 1979년에 <취권>이 개봉했다. 이소룡의 후계자로 키워졌던 성룡이 영웅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꽤나 힘들었지만, 나에게는 이소룡에서 성룡까지가 순식간의 일이었다. <취권> 그리고 먼저 만들어졌지만 국내에는 늦게 개봉한 <사형도수>, <소권괴초> 등 코믹 쿵푸영화는 당대를 사로잡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단 재미있으니까. 성룡이 ‘명절 영화’로 극장가만이 아니라 TV까지 사로잡은 것은 그 정도로 재미있었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즐거워할 요소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성룡도 이소룡의 뒤를 이어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할리우드도 이소룡을 대체할 새로운 쿵푸 영웅을 원했다. 하지만 주연을 맡은 <배틀 크리크>가 실패했고, <캐논볼 런>에 조연으로 출연한 것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서양인들이 원한 쿵푸 영웅은 절대적으로 강한 남자였다. 1970년대 포르노 스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부기 나이트>에서도 이소룡은 10대 서양 남자애들의 우상으로 등장한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그 시절 동양인인 이소룡이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인들이 보기에도 절대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맹룡과강>에서 척 노리스와 싸우고, <용쟁호투>에서 007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모험을 벌이면서 서양인을 때려눕히는 이소룡은 강했다. 주먹은 한방으로도 KO를 시킬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다. 발차기는 그 이상이었다. 강해지기를 원하는 동서양의 남자애들에게 이소룡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총이나 칼 없이 오로지 몸 하나로 최강의 자리에 오른 남자.
성룡은 약했다.
<취권>과 <사형도수>에서 성룡은 고된 훈련을 통해서 강해진다. 하지만 마지막 대결에서도 악당에게 수없이 맞다가 겨우 역전의 기회를 잡아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천신만고 끝에 때려눕힌다. 코미디와 액션의 조화가 훌륭했기에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서양에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절대적인 강함이 아니라 악전고투 끝에 승부를 내는 끈기였다. 일본식으로 한다면 근성. 성룡이 아무리 강하게 상대방을 때려도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약했다. 맞다가 겨우 승부를 내는 성룡의 스타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쓸쓸하게 홍콩으로 돌아온 성룡은 이소룡의 아류가 아닌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홍금보, 원표와 함께 경극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성룡은 뛰어난 무술가가 아니었다. 갖가지 무술과 곡예를 익히고, 다양한 테크닉과 장치를 활용하여 멋진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였다. 그것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프로젝트 A> <용형호제> <폴리스 스토리> 등은 기존의 무협영화나 이소룡의 쿵푸영화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홍콩 액션영화였다. 아크로바틱한 액션을 주무기로 하면서 웃음과 감동을 함께 끌어낼 수 있는 가족영화. 이소룡과 다른 길로 간 성룡은 다시 할리우드에 가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재빠르고 신기한 액션을 보이는 남자로서의 성공.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최고의 무술 배우는 당연히 성룡이다.
하지만 나는 성룡에게 확 빠지지는 못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재미있고 최상의 오락이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성룡은 인간적이었고 따뜻했지만 내가 따를만한 남자는 아니었다. 무술로만 본다면, 성룡보다는 오히려 할리우드의 <형사 니코> <언더 시즈>에 나온 스티븐 시걸이 나았다. 장 끌로드 반담은 호쾌하지만 단순해서 번외였다. 일본의 고무술을 배웠다는 스티븐 시걸은 상대가 공격하면 그 힘을 이용하여 집어던지고 꺾고 부러뜨렸다. 손기술을 현란하게 사용하며 상대를 압도했다. 거의 한 대도 맞지 않고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한다. 그게 비현실적이라기보다는 스티븐 시걸의 강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영화에서 보이는 것만으로도, 스티븐 시걸의 무술은 충분히 강해보였다. 다만 시걸은 경박해보였다. 강한 것은 매혹적이었지만 배우 자체에게 끌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연걸을 만났다.
<소림사>도 보았고, <동방불패>도 보았다. 멋있었다. 중국의 무술대회에서 우승한 이력답게 이연걸의 액션은 정확하면서도 화려했다. 하지만 <황비홍>이 없었다면 내가 이연걸을 그리 좋아할 수 있었을까? 서극이 만든 <황비홍>은 실제 인물의 이야기다. 일본과 서구 열강이 중국 대륙을 파먹고 들어갈 때 실존했던 영웅. 혼란기에는 무술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었고, 돈이나 관직을 바라며 서구와 일본에 붙어먹는 사람도 있었다. 황비홍은 자신의 도장을 지키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필사적으로 찾는다. 맨몸으로 싸운다면 황비홍은 천하무적이다. 하지만 대포와 폭약이라면 황비홍의 무술은 소용이 없다. 총 한방은 피할 수 있지만 기관총이나 수많은 총구가 동시에 노리고 있다면 피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다. 뛰어난 과학기술 앞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강함’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황비홍은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피하지 않으면서, 자신(중국)의 약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찾아가면서 싸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을 추구한다. 강하지만 지금 모든 것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황비홍>을 보면서 그의 인품이나 강함이 아니라, 그의 태도에 반했다.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의 강함을 맹신하지 않는 것. 이길 수는 있지만, 굳이 이기려 하지 않는 것. 그것을 보고 싶어 극장에 가고 또 갔다. DVD로도 수없이 봤다. 그렇게 강해지고 싶었다.
가끔은 생각해본다.
사춘기 시절에 <황비홍>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그 시절의 나는 약했다. 약해빠졌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강해지는 게 방법인지도 잘 몰랐다.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몸을 단련하고 무술을 배워 강해지면, 자신감도 생기면서 말더듬도 고쳤을 수 있다. 하지만 아니라면? 강해졌는데 여전히 나는 말을 못 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더 뒤틀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미이케 다카시가 영화화한, 야마모토 히데오의 만화 <고로시야이치>(이치 더 킬러)의 주인공은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강해지고, 최고의 킬러가 되었지만 여전히 유약하다. 그래서 엉뚱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오히려 극악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단지 강한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걸 그 시절에 알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절에 그렇게라도 강해졌다면 아마도 꽤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더듬이 시작되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에는 그야말로 혼란 자체라서, 갑자기 닥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차라리 몸이라도 단련했다면 조금 더 단순하게 ‘사실’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랬다면 나는 조금 더 빨리 세상을 받아들였을 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것은 그저 가정일 뿐이고, 그런 과거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어리석은데, 그 시절은 더욱 더 어리석었고 무엇보다 어렸다.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을 맞아서 그저 소리 없는 비명만 지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아무런 과정도, 목적도 모른 채 강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아니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강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5. 폭력에 빠져들다. - 동서추리문고와 모음사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고, 그들의 모험과 영민함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는 어른이 되면서 대개는 잊어버린다. 기묘한 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현실에서 거의 쓸모가 없으니까. 나 역시 트릭 자체에 몰두하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홈즈 이후 추리소설 읽기의 정석 코스인 아가사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을 만난 것은 동서추리문고를 통해서였다. 자주 들르던 동네 서점에는 사각형의 기둥처럼 만든 책꽂이에 동서추리문고가 가득 꽂혀 있었다. 용돈으로 사는 책이니 신중했다. 제목을 보고, 뒤표지에 적힌 줄거리 요약을 보고 결정했다. 나중에는 일부 책 뒤에 실린 전체 목록을 보고, 그 안에서 체크를 하며 읽고 싶은 책을 골랐다.
추리문고이기는 했지만 SF도 있었다. 프레데릭 브라운의 <미래에서 온 사나이>,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연대기>, 알프레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 등등. SF의 수가 많지 않아 굳이 고를 필요도 없이 다 읽고 싶었다. 하지만 미스터리를 고르면서는 특정한 취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푸라기 여자>, <야수는 죽어야 한다>, <악마 같은 여자>, <피의 수확> 같은 하드보일드한 범죄소설에 더욱 끌리게 되었다. 기발한 상황이나 복잡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보다 사건을 둘러싼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흥미로웠다.
나는 알고 싶었다.
그들의 마음을. 그들은 왜 누군가를 죽이려하는 것인지, 그 마음이 어디에서 생겨나 어떻게 현실로 옮겨지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 시절의 내 마음이 그랬으니까. 나는 죽이고 싶었다. 흔히 아이들은 잔인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안겨주는지 알지 못하기에, 헤아릴 수 없기에 쉽게 폭력을 휘두른다. 주눅이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싸웠다. 조롱하고 시비를 거는 아이들에게 대들었다. 그것밖에 할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안 가 알게 되었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 내 키는 앞에서 세는 것이 빨랐고 체격도 왜소했다. 내가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아이들은 극소수였다. 싸워봤자 서로 씩씩거리다가 친구들이 떼어놓는 정도였다. 뒤에 앉은 큰 애들한테는 아예 말조차 걸기 힘들었고.
봉천동은 못 사는 동네였다.
집에서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전형적인 달동네에서 조금씩 개발이 되어 가던 동네. 학교 분위기는 거칠 수밖에 없었다. 시험 때 답을 보여주지 않았다며 휘두른 의자에 맞아 머리가 터진 아이도 있었다. 지금처럼 조직적으로 돈을 뜯어내거나 괴롭힘을 가하는 일이 없었던 시대라 그나마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정반대로 일찌감치 뭔가에 의존하려 했을 수도 있겠다. 직접적인 폭력이나 자해나 중독 같은 것들. 하지만 그 시절의 중학생들은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히 그랬다. 그건 봉천동이라는 지역적 특성일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뒤처진, 약삭빠르지 못한 동네.
그리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살의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안개처럼 뿌옇다.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중학교 때 눈 위로 뭔가 먼지, 연기 같은 것이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별 거 아니라고 시력이 많이 나쁘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변한 건 없었다. 별 것 아닌데, 정상인데 내 눈에는 이상한 게 떠다니고 있었다. 이유도 모르는데,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감정도 그랬다. 이것이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내 감정이 상한 것은 맞는데, 하지만 그건 내가 말을 못하니까 그런 거잖아. 안다. 아는데 억울하고, 억울한데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책만 읽었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세상에 필요가 없는 것들로 도망쳤다. 공부를 해 봐야,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임을 예감했으니까 공부는 하지 않았다.
동서추리문고는 꽤 수준이 높은 시리즈였다. 미스터리의 고전과 하드보일드 걸작, 첩보물과 모험소설, SF까지 고루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쯤에, 광화문의 덕수제과(그 시절에 중고생 미팅 장소로 유명했던) 옆에 있던 대형 서점(교보가 생기기 훨씬 전에 있던)에서 흥미로운 시리즈를 발견했다. <디스트로이어>, <닌자 마스터>, <차퍼> 등 제목만으로도 싸구려 느낌이 드는 액션 스릴러물이었다. <디스트로이어>는 폭력조직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마블 코믹스의 초능력 없는 슈퍼히어로 퍼니셔도 비슷한 설정이고, 이런 막장 복수극의 걸작으로는 <맨 온 파이어>로 영화화된 A. J. 퀸넬의 <크리시>가 있다. <디스트로이어>는 막장 복수극 중에서도 오로지 오락만을 추구한 소설이다. 죽이고, 또 죽이고, 도중에 만나거나 악당에게서 구해준 여자와 섹스하고 다시 떠나고. 다른 것들도 비슷했다. 주인공은 엄청난 살인 기술을 소유한 능력자이고 닥치는 대로 죽인다. 뻔하디 뻔한 액션 스릴러. 나는 그 책들을 하나씩 사서 읽었다. 걸작 미스터리도 좋았지만, 싸구려 쾌감에도 나는 기꺼이 끌려들어갔다. 의미는 중요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벗어나 폭주하는 쾌락이 무엇인지 그 때 느꼈다. 그것들을 읽는 순간은 잊을 수 있으니까. 현실의 내가 어떤 존재,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외면할 수 있었으니까.
의도적으로 나는 인생의 가치를 외면하고 싶어 했다.
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아예 거부하겠다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의미를 어디에도 부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팝송을 들으면서도 일부러 단 한 번도 해석해보지 않았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고전을 기피했다. 학교에서 읽으라는 책, 고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는 아무 것도 못하는 인간이니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그런 것은 인생을 잘 살아내기 위한 수단이고 방법이니까, 나 같은 고장난 인간에게는 필요 없다고 도피했다. 그래서 아무 의미 없는 킬링타임에 나는 오히려 빠져들었다. 공부도 하지 않았고, 오로지 책과 영화, 음악에만 몰두했다. 거기에서 뭔가 배우려는 생각이 아니라,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오로지 도피하겠다는 일념이었다.
도피처로 가장 좋은 것은 가상의 폭력이었다.
부숴버리고 싶은 욕망들, 복수하고 싶다는 욕망을 그 순간만은 달래줄 수 있었으니까. 그런 걸 보고 현실에서 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그 순간만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한동안은 잠잠했다. 현실의 폭력을 가져오는 것은 모방이 아니라, 마음속의 욕망이 더 이상 갈 곳을 잃어버렸을 때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원인을 돌리고,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으로 욕망을 달래고 싶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밀도 깊은 범죄소설도, 싸구려 액션 스릴러도,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도 그런 점에서 나에게는 무척이나 유용했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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