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하늘사진,매일매일,2024년 캘린더,캘린더

 


2009년 어느 날부터 

매일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2024년 캘린더를 만들기 위해
2022년 365일의 하늘을 정리하며
화려한 하늘을 손꼽아 봅니다.

손가락으로 꼽힌 매일의 하늘을 제외하고는 
우리 곁에 존재하는 소박한 하늘의 연속입니다. 

서로 다른 하늘 속에서 
일상의 신비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하늘을 바라봅니다. 


2022년 매일 매일의 하늘로

2024년 매일 매일을 채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지 않고 스치는 작고 사소한 것들을
모아 작업하는 엄효용 사진작가는 2009년 6월 25일부터 하늘을 찍기 시작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의 하늘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 캘린더 프로젝트는 이번까지 열두 번 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이 서울의 하늘이지만 때로는 부산, 강원, 제주
저 멀리는 유럽과 중동 등 세계 도시까지…… 곳곳의 하늘을 담아냅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볼 수 있도록 만든 2024년 ‘365 하늘 달력’은 작년 이맘 때 오마이컴퍼니 크라우드펀딩에서 소개해드렸던 '2023년 365 하늘 달력' 과는 또다른 하늘의 모습을 담아 여러분들이 이 달력을 보면서 마음의 위로와 희망을 느끼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일 어느 곳에 있든 그곳의 하늘을 포착해 사진으로 남깁니다.





 


매일 매일의 하늘이

여러분 일상에 들어옵니다


2024년에 만나는 365 하늘 달력은 2022년의 365개의 하늘을 담았습니다.
2022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의 하늘을 모두 담아 준비했습니다.

매일 아침 침대 테이블에서, 사무실 책상 위에서
하늘을 만나 보세요.

그리고 잠시 시간을 내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세요.

밥 딜런의 가사처럼
‘하늘을 얼마나 올려봐야 진정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해봐요.

그렇게 쌓아가는 소중한 하루 하루를 기억하며
힘겹지만 사랑스러운 오늘을 미래로 가져갑니다.


2024년 365 하늘 달력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매일매일 바라보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진 하늘
일년이 되고 십년이 훌쩍 넘어간다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작업실을 향하는 길에서 만나는 한강의 모습
센바람을 담은 물결..
빗방울의 동심원을 담은 표정..
핑크 빛 노을을 담은 울렁이는 모습..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오늘이 채워지길 소망한다

서로 다른 365개의 하늘이 모여
서로 다를 2024년의 하루하루를 채웁니다 

 


하늘 달력 사이즈 및 특성_ 

 

2024년 하늘 달력 디자인 구성_  

   



-. 하늘캘린더 프로젝트
-. 사진 엄효용
-. 디자인 529studio 장의규
-. 인쇄 jungwoo pac 김정환 


엄효용 포토그래퍼는

평범한 일상에서 오랜 시간 반복된 작업으로 진정한 의미를 찾는 따뜻한 시선을 가졌다. 흔한 가로수 수백 그루를 찍어 하나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완성하고, 매일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찍은 하늘로 일 년을 완성한다.

그렇게 엄효용은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작가노트 

약력

홍익대학교 산미대학원 사진디자인 전공 졸업
홍익대학교 광고홍보학부 사진학 강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디자인학부 사진학 강사

 

사진 전시

2023 <Auspicious Snow> 고공갤러리 
2023 <초록의 쉼표> 무늬와 공간
2023 <그날, 나무> 아트갤러리 
2022 <하추로낙역송여름> 생활지음갤러리
2022 <BLUR> art B project 
2021 <진실의 실체가 나타날 때> 나우갤러리
2020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BGN갤러리
2020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희수갤러리
2019 <리틀 포레스트 2> 반도갤러리
2019 <리틀 포레스트> 희수갤러리
2011 <Face of Things> 123갤러리
2010 <The Hidden Harmony> 갤러리 룩스

등 개인전 및 단체전 다수





추가리워드_나무, 눈 사진 엽서 

! 2024년 하늘달력을 1개 이상 펀딩하신 분들께는 엄효용 작가의 나무와 눈 사진이 인쇄된 엽서를 제공합니다.

2016년 눈

2017년 눈

 2017년 눈

2021년 눈

2021년 눈

2021년 눈

소월로 은행나무, 여름 2014

메타세쿼이어로 메타세쿼이어, 여름 2015


종합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 2018


양재대로 은행나무, 여름 2020


봉강가술로 은행나무, 여름 2020


 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 2020
 

작가의 친필 사인을 담았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일정 

펀딩 진행:  11월 20일~12월 20일
리워드 배송 일정 :  1차_ 12월 10일 , 2차_ 12월 21일  

 


작품 이미지 보러가기

https://neolook.com/archives/20210402h
https://neolook.com/archives/20101006i
https://neolook.com/archives/20190711c
https://neolook.com/archives/20200520g
https://neolook.com/archives/20230907e
https://mpembed.com/show/?m=kux72AL9uxQ&mpu=1857
https://blog.naver.com/foto3570/222304783266


지난 달력 이미지와 서문 소개 

 

 2013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은
우리가 인식하지 않고 스치고 지나버리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의 합이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 행복을 이루는 것이다.

2014

이렇듯 하늘은 일상을 치유하는 대상을 넘어서서
우리 몸의 일부분임을 자각하는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2015

무덤덤한 하늘을 찍는다.

지나가는 아주머니는 하늘을 바라본 뒤 퉁명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가던 길을 재촉한다.

잔뜩 기대한 영화 세트장에서 듣도 보도 못한 배우를 본 듯한 표정을 안은 채……

지금 무덤덤한 하늘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지 못한다면
미래의 무지개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16

그렇다.

생산적인 행동만이 내 지각의 중심부에 있었고
하얀 꽃이 피어나면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이팝나무는 배경으로 흘려보냈기에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전에도 여여하게 우리 곁에 존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보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자연...... 나무하늘공기 등을
내 지각의 중심부에 가져올 때
삶의 황홀경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017

먼 여행길을 나서는 비행기에서 마주한 하늘,
그 하늘을 놓기 싫어 지금까지 그렇게 집착하나 보다.

그렇게 찍기 시작한 하늘,
그것도 부족해 매일 매일 하늘과 이야기를 나눈 지
어느덧 7년의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일상의 평범함이 무한반복 된다.

2018

삶이란 우리가 거대한 계획을 짜느라 바쁜 동안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무엇이다.

행복이란 평범한 매일의 일상을 조금은 느긋하고 조금은 자세히
바라볼 때 체험되어지는 것이다.

2019

행복이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모든 것은 흐르고 변화한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어떤 일이 진행 중인지를 살피는 것관찰을 통해
일상이 어느 순간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2020

바람 그리고 햇볕,
화분이 마를 무렵 물을 주는 수고로움뿐...

차나무는 늦은 10월에 꽃을 활짝 피어주었고
무화과나무도 화분에 넘칠 만큼 잎이 무성해지고
여러 개의 무화과도 보여주었다.

들에 핀 나리꽃은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하지 아니하여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듯...
그렇듯 조금은 자연을 닮고 싶다.

2021년 

언젠가는 양들이 노니는 양떼구름으로
언젠가는 솜뭉치 같은 뭉게구름으로
언젠가는 비 가득 품은 비구름으로

언젠가는 노을빛띤 뭉게구름으로.......

어떤이에게는 빵 굽는 재주를 
어떤이에게는 벽돌 쌓는 재주를
어떤이에게는 옷 만드는 재주를

어떤이에게는 피리 부는 재주를......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나를 담기 위해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서로 다른 365개의 하늘이 모여
서로 다를 2021년의 하루하루를 채웁니다.

2022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현대의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이지만, 실천하기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늘 사무실에 갇혀 거북목이 되도록 컴퓨터와 씨름하고,
황사와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은 바라봐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더욱이 올해 2021년은 작년에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정적으로 보낸 한 해.

최근 위드코로나로 일상회복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으나 해외 변이 바이러스와 국내 확진자 폭등세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일상으로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2023년 

왜 이토록 하늘에 집착하는 걸까?

사각의 프레임 속에서 하늘과 만나는 오롯함이
상처받은 나를 버티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심장으로 들숨을 쉬고
나는 하늘로 날숨을 쉬고 있었다.

 


 

엄효용 작가 눈 , 나무 이미지 노트 및 평론글  

 

눈 이미지 -

<상서로운 눈과 그 눈에 덮인 세상>  황현승(기획자,작가)

엄효용은 수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려오는 눈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눈이 내려오고 있다. 아니, 작품을 벽에 세워 걸었으니 눈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까마득한 어둠으로부터 솟아 나온 빛의 입자들처럼 명멸하며 다가오는 눈송이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한 눈송이들은 캄캄한 삶에도 간혹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둠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내어 보는 반짝이는 용기 같기도 하다. 때로 화면을 가득 메운 함박눈의 형상은 모든 애틋한 것들을 향한 그리움의 함성이다. 많은 이야기를 걸어오다가도 문득 고요하게 잦아드는 눈 이미지들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으로 조용하게 소란스럽다. 

엄효용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기록한 눈송이들의 궤적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나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연상시킨다. 불규칙적이고 무계획적이며 우연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하얀 궤적들은 바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조리개가 열려 있는 동안 스트로브strobe를 여러 번 터트려 눈송이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엄효용은 현대 기술을 활용해 사진에 대한 통제권을 지닌 채 여러 장의 사진을 중첩시키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사진기가 지닌 기본 기능만으로 피사체를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했다. 작가의 이런 행보는 본디 사진이 갖고 있던 고전적인 장점들을 작품 속에 되살려냈다. 대상을 선택하고 연속하는 시간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여 화면 위에 붙들어 매는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사진 안에 포착되지 못한 사진 밖의 수많은 대상들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진 안에 고정된 한 순간 앞뒤로 늘어서 있는 고정되지 않는 마음들, 사람들, 사건들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을 배가시킨다. 찰나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는 내용상으로 제약 받을 수록 의미적으로는 더욱 확장된다. 관람자들은 상상 속에서 사진의 물리적 테두리를 벗어나 끝없이 이어지는, 눈 내리는 밤의 시공간 안에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무한히 대입할 수 있다.

작가가 전통적인 사진술로 회귀하며 사진 속에 되살려 낸 것은 의미의 역설적 확장만이 아니다. 작가가 통제권을 사진에 양도함으로써 작품 안에 증대된 우연성은 그의 사진을 전보다 자연스럽고 창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기는 태생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록한다. 사진기가 피사체를 수용하기에 앞서, 대상을 선별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결정하는 작가의 선택이 있지만, 그것은 허락된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동적 선택이다. 사진은 작가가 수세적일 수록, 사진에 대한 작가의 권력이 약해질 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엄효용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기록한 눈송이들의 궤적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나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연상시킨다. 불규칙적이고 무계획적이며 우연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하얀 궤적들은 바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조리개가 열려 있는 동안 스트로브strobe를 여러 번 터트려 눈송이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엄효용은 현대 기술을 활용해 사진에 대한 통제권을 지닌 채 여러 장의 사진을 중첩시키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사진기가 지닌 기본 기능만으로 피사체를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했다. 작가의 이런 행보는 본디 사진이 갖고 있던 고전적인 장점들을 작품 속에 되살려냈다. 대상을 선택하고 연속하는 시간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여 화면 위에 붙들어 매는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사진 안에 포착되지 못한 사진 밖의 수많은 대상들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진 안에 고정된 한 순간 앞뒤로 늘어서 있는 고정되지 않는 마음들, 사람들, 사건들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을 배가시킨다. 찰나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는 내용상으로 제약 받을 수록 의미적으로는 더욱 확장된다. 관람자들은 상상 속에서 사진의 물리적 테두리를 벗어나 끝없이 이어지는, 눈 내리는 밤의 시공간 안에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무한히 대입할 수 있다.

작가가 전통적인 사진술로 회귀하며 사진 속에 되살려 낸 것은 의미의 역설적 확장만이 아니다. 작가가 통제권을 사진에 양도함으로써 작품 안에 증대된 우연성은 그의 사진을 전보다 자연스럽고 창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기는 태생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록한다. 사진기가 피사체를 수용하기에 앞서, 대상을 선별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결정하는 작가의 선택이 있지만, 그것은 허락된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동적 선택이다. 사진은 작가가 수세적일 수록, 사진에 대한 작가의 권력이 약해질 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엄효용의 개인전 <Auspicious Snow> 는 한밤에 눈 내리는 소리와 겨울 숲의 정적으로 가득하다. 이번 전시는 눈을 주제로 한 신작들과 기존 작업 중에서 겨울나무 이미지들만 모아서 엮었다. 밤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눈밭 위에 서 있거나 눈으로 덮인 겨울나무들을 한 자리에서 보고 있으면, 밤 사이 내린 눈이 그렇게 나무들과 만난 듯하다. 작가의 겨울나무들은 기존 작업 중에서도 그 숨결이 유독 부드럽고 정적이다. 스스로 부차적인 것들을 다 털어 버리고 본질만을 남긴 나무의 메마른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너진 마음을 바로 세우게 하는 힘이 있다. 혹한 속에 홀로 서서 의연히 살아가는 겨울나무의 이미지는 뜻밖에도 관람자들의 마음에 추위가 아니라 따듯함을 건내준다. 겨울나무 이미지의 이러한 맥락은 신작 눈 연작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과 맞닿아 있다. 거대한 어둠을 이기는 눈송이들의 여린 목소리와 겨울나무의 낮고 평화로운 숨소리는 작품 앞에 선 이들의 와해된 마음을 넉넉히 일으켜 줄 수 있을 것이다. 훈기를 지닌 엄효용의 겨울 사진들은 외로움과 결핍이 아니라 삶의 소박한 기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노트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리길 기다린다.
겨울 하늘에 어둠이 내리고
눈, 바람, 빛이 만나면
한 편의 교향곡에 맞추어
눈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중력을 가지는 모든 것은
신비함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채워간다.

나무 이미지-

<진실의 실체가 나타날 때>  반이정 미술평론가

시선과 수평에 놓인, 또는 시선과 수직에 놓인 흔하디흔한 피사체의 연속 기록이 엄효용이 전시에 내놓은 전부다. 나무와 하늘. 선택된 나무는 도심 대로변에 통상 줄지어 세워진 가로수인데, 인화지에 담긴 나무에선 가로수 고유의 규격화의 몰개성이나 조경의 손길이 지나간 인위적인 질감을 느낄 수 없이 그저 비현실적이다. 가로수 한 그루인양 보이는 나무는 품종이 같은 가로수 100-300 여점을 정교하게 중첩시켜 완성한 한 그루처럼 보이는 100-300 그루의 나무다. 한편 하늘 사진은 2009년부터 매일 기록한 연월일이 다른, 미묘하게 다른 수천 개의 하늘을 나열한 것이다. 같은 대상을 기록하되 나무 연작은 한 장 위에 쌓아올렸고, 하늘 연작은 한 줄로 열거했다. 100여 겹으로 층층이 쌓은 한 그루처럼 보이는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의 모습은 각 품종별 나무의 보편성을 불명료하게 담고 있을 뿐 나무의 개별성은 지워져있다.

나무 연작은 중세 보편논쟁Controversy of Universal이라 알려진 서양철학사의 화두와 잇닿아 있다. 이 세상에는 구체적인 존재보다 그것을 아우르는 보편적 개념이 우선한다는 실재론實在論과 이에 반해 보편적 개념은 추상적인 명칭에 불과할 뿐 개별적 존재가 우선한다는 유명론唯名論의 힘겨루기를 철학사에선 보편논쟁이라 한다. 엄효용의 나무 사진을 빗대어 풀이하면, 작품 ‘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 2020’은 100여 그루의 개별적인 독일가문비나무들을 재현한 게 아니라, 독일가문비 나무라는 보편성을 재현한 사진이라 하겠다. 보편성을 재현한 만큼 대상이 선명하질 않다. 사진은 가시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무언가의 보편성을 기록하진 못한다. 요컨대 거실에 놓인 조명 스탠드를 찍건, 선착장에 막 입항한 크루저 호를 찍건,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를 찍건, 그것은 개별적인 조명기와 호화유람선과 참새를 재현한 것이지, 조명기 호화유람선 참새 각각의 보편성을 재현했다고 보진 않는다.

도시의 길가에 일렬로 조경된 가로수의 조성 목적은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 것에 있다지만, 정작 현실에서 그 무수한 가로수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이는 거의 없다. 가로수는 부지불식간에 도심 풍경을 인공적으로 구성하는 여러 단위에 하나로 이따금 지각될 뿐 각별한 인상을 주진 못한다. 그처럼 별 볼 일 없던 가로수의 존재감을 층층이 쌓아 인화지 위에 단 한 그루의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어, 은행나무, 벚나무로 출력한 연작 속에선, 자연 사물이 아닌 인위적이고 각별한 볼거리처럼 각 나무 품종의 보편 이미지가 가공되어 나타난다. 한 점을 구성한 각 100여점의 개별 사진 속에는 정중앙에 놓인 나무의 배후로 아파트 단지며 민가 등이 원거리에서 작게 잡혀있지만, 단일 품종 나무의 보편성을 담은 한 그루의 나무 사진을 보면 아파트며 민가 같은 배경은 모두 파스텔 톤 화면에 흡수되어 비현실적인 나무의 자태를 구성하는 망점으로 대체되어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조로 가공된 화면의 정중앙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특정 품종 나무의 보편성이 자리하고, 그 나무를 둘러싼 주변과의 경계가 희미하게 무마되면서 ‘나무가 스며든 풍경’처럼 보이는 전면화 된 화면, 구체적인 세부가 해체된 점묘화법 그림이 출현한다.

전면화 된 화풍의 전매특허는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추상회화에 있다. 엄효용의 나무 사진처럼, 추상회화도 개별 대상이나 구체적인 서사에 관한한 ‘말없는 그림’으로 일관했으며, 세계 공용어라는 미의 보편성을 취한 점까지도 서로 닮았다. 이처럼 전반적인 파스텔 톤 화면으로 개별 대상을 지워버린 작업은 엄효용의 초기작부터 나타난 바 있다. 동전, 전원 스위치, 그림 캔버스 따위의 일반 사물의 앞뒤 혹은 좌우를 한 면에 중복시켜서, 피사체를 ‘준’ 입체적으로 재현한 2010년 연작은 개별 피사체의 정면성을 직시하지 않고, 피사체의 본질을 다루려 한 점에서, 그리고 동일한 대상을 한 면 위에 중복시킨 점에서 나무 연작의 맹아 격이라 하겠다.

혈혈단신으로 착시하게 만든 종래 가로수 연작과 대비되는 2020년의 후속작업은 숲의 중심을 찍은 나무 군집 연작이 많다. 비록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포착되었으나 화면 정중앙엔 핵심 나무를 위치시켰고, 균질적인 파스텔 톤 화면이 전보다 훨씬 전면화 되어 나무의 정확한 품종을 식별하기 어렵다. ‘백두대간로 소나무 여름 2021’이나 ‘하추로 낙엽송 여름 2021’이 그런 경우다. 한편 ‘봉강가수로 메타세쿼이어 가을 2020’처럼 반복적인 이미지의 중첩은 사진에 담긴 나무를 그저 간단명료한 삼각형 도형으로 치환시킨다. 후속작업 속의 나무들은 개별적인 품종의 분류보다, 전면화 된 그림의 단계로 접어든 사진처럼 나타난다. 이는, 현상을 고스란히 옮겼던 종래의 사진 언어에서, 현상을 새롭게 가공하는 그림의 언어를 쓰는 동시대 사진의 문법이기도 하다.

실재론의 시초로 할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선, 시공을 초월한 본질을 이데아로 봤고 개별 사물은 이데아의 그림자, 이데아를 모방한 복제품으로 평가 절하한다. 플라톤의 견지에서 그림이란 이데아를 모방한 복제품을 또 다시 복제한 만큼 ‘그림자의 그림자’로 과소평가 되었다.

한편 하늘 연작은 카메라 렌즈를 90도 수직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어서, 하늘에서 추락하는 빗물과 눈의 모습이 평소 우리가 비와 눈의 낙하 장면을 수평으로 볼 때와는 다르게 재현되었다. 흡사 재물대에 얹은 관찰 대상을 현미경으로 본 것처럼, 자잘한 물방울이 나선형으로 확산되는 그림처럼 나타난다. 하늘 연작은 2009년 6월부터 매일 매일 찍은 하늘 기록물로 작가가 말없이 적어내린 개인 일기와 같은 것이 되었다. 이는 나무 연작에 붙인 작품 제목과 같은 효과를 주는 것 같다.

죽향대로 메타세쿼이어 가을 2015, 위례성길 은행나무 가을 2020
나무 연작 가운데 작품 두 점의 제목이다. 메타세쿼이어의 보편성과 은행나무의 보편성을 담은 이 두 사진의 제목처럼, 나무 사진 연작 모두에 나무 품종, 해당 가로수를 식목한 장소, 연도 그리고 계절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보편성을 띤 특정 품종의 나무가 놓인 시공간을 함께 표시한 것이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때 그 곳에 작가가 함께 있었음을 기록한 개인 일기를 제목에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사진에 담는 피사체들만 바뀔 뿐 반복적으로 피사체들을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면서 자기 사유를 발전시키는 것일 게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대립 개념들이 편 가르기를 하며 이분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실은 서로 의존하고 있음이 우주의 본래 질서라는 생각에서 나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나의 작업은 대응, 대립되는 개념(겉과 속, 앞과 뒤, 빔과 참....)들 속의 숨겨진 조화를 프레임 속에 담고자 했다.”

피사체의 일면이 아닌 중층의 면을 줄곧 담은 엄효용의 작가노트 중 일부를 옮겼다.

당도한 결론은 아마 나와는 다른 것이겠으나, 그가 사유한 시작점 만큼은 요 몇 년 사이 내가 격렬하게 경험해서 얻은 통찰과도 맞닿는다고 생각했다. 선명한 선악의 대립을 전제할 때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기 쉬울 것이다. 세상의 갖은 갈등들 역시 지향하는 위치가 엇나갈 때 촉발된다. 단순명료한 이분법이야 말로 선동 메시지의 효과를 높인다. 그렇지만 진실이란 ‘예’와 ‘아니오’ 사이에 중층적인 스펙트럼을 지니는 걸 깊은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예’의 입장이어도 20%의 ‘아니오’를 담은 유보의 입장은 우리 내면에 흔히 존재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외국어 학습이 어려운 여러 이유 중 하나를 생각해 본다. 현지인에게 자신의 복잡한 속내를 고작 ‘예’ 아니면 ‘아니오’ 둘 중 하나만 골라 전달하는 미숙한 자신의 표현력 한계에 번번이 부딪힐 때 외국어 학습에 좌절하게 된다. 경험칙에서 얻은 진실의 실체는 파스텔 톤 그림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나무이되, 어떤 품종인지 선명한 확신을 주지는 않는 엄효용의 사진과 닮았음을 현인이라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