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퇴사를 결심했을 때는, 단 일분일초도 회계법인을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였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조금 솔직해지자면, 나는 도망쳐나왔다.
서울의 좁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답답해, 시골집 한달살이를 알아봤다. 깨끗하고, 일하기 편한 환경이면서도 주변이 관광지가 아닌 조용한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10년 간의 성장통은 회계사로서의 나를 만들었지만, 내 마음까지 성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에 매몰되어 지내는 동안 힘듦을 잊기 위해 나는 술을 마셨고, 운동을 했고, 반짝이는 물건들을 수 없이 사들였고,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았다.
해남도, 한옥도 둘 다 내 선택지엔 없는 옵션이었다.
그런데 결국 돌고돌아 해남 한옥을 만났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거의 모든 한옥 매물을 본 것만 같았다. 그러다 밤에 잠들기 전 누워 검색을 하는데 WAKA가 된 이 집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옥은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구조를 가진 건물이었다.
나무 기둥 몇 개가 탄탄하게 얽혀 그 무거운 기와를 지탱해내고 있었다. 바닥으로부터 올라온 습기로 인해 기둥 아래가 다 썩어 있어도 건드리지 않으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작업자분들은 건드리지 않으면 괜찮으니 그냥 덮고 가자고도 하셨다.
하지만 이왕 손대는 거 기초부터 제대로 잡고 싶었다. 매일 공사가 마무리되면 밤마다 가서 다음 공정을 위한 공부를 했다.
기초만 제대로 보수하면 그 뒤는 수월할 줄 알았는데, 해남에서 구한 작업자분께 우리가 원하는 컨셉을 이해시키는 것 역시 정말 힘들었다. 리니어하고 심플한 공간을 본 적도 없는 분들에게 그걸 해달라고 하니 서로가 힘들었다.
글을 다 써 놓고 세상에 내어 놓기 싫었다던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관광지도 아닌 시골마을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컨셉의, 워케이션 한옥을 내어놓자니 어마어마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예쁘고 좋다고 생각해 세상에 WAKA를 내놨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나 이대로 망하는건가?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WAKA를 고치는 데 딱 1년이 걸렸습니다.
1년 동안 집만 고친 게 아니라, 저라는 사람도 같이 성장해 왔어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레 재택근무를 하면서, 도시를 벗어난 사무공간을 찾게 되었어요.
관광지가 아니면서도 일하기에 편안한 곳을 찾았지만, 딱 맞는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옥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전 한옥의 정의는 한국사람이 사는 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양식이 달라졌다면, 그에 맞춰 한옥의 모습도 바뀌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현대와 전통의 만남을 WAKA에서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도시의 오피스라는 공간에서 자유로워지고, 저와 같은 프리워커들이 더 늘어나겠죠?
도시에만 머물러야 하지 않는 삶의 모습들이 늘어난다면, 도시가 아닌 곳에 대안적인 공간들이 생겨나야 수도권 중심의 급격한 발전을 해온 한국사회가 가진 문제들도 하나씩 해결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일이 제가 하고 싶은 것이란 걸 깨달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WAKA라는 첫 삽을 떴습니다. 하나의 사업으로서의 WAKA가 사업성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합니다.
저는 시골에 머물러보고 싶은 도시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정주 할 수 있는 따뜻하고 힙한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WAKA는 스테이 형태로서의 빈집 재생 모델입니다.
이 지역에도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고,
공간이 생기면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앞으로의 사업 확장에 대한 마일스톤과 타임라인에 따른 계획은 없지만, 저의 방향성은 명확합니다.
그렇게 앞으로 해남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찾아나가는 중입니다.
* 에세이책은 전자책(PDF) 형태로 제공됩니다.
WAKA에서,
해남의 들녘에서,
마을 어귀에서,
바닷가에서!
어디에서 써도 찰떡같이 어울리는 해남을 담은 고구마모자
제주도의 감귤모자 처럼 지역 특산품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제작한 해남고구마모자는 해남의 특산품인 고구마를 상징합니다.
보라색에 고구마의 노란 속살을 표현한 노란방울로 모자를 쓰고
해남의 관광지에서 인생샷을 한번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