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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오마이컴퍼니가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Interview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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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감동을 재해석하다 <동학언니들>
등록일
2015-05-07
등록자
오마이컴퍼니

  가로수에도 봄기운이 묻어나던 4월의 마지막 주, 생생한 기운을 뿜어내던 계룡산 자락을 찾아 창작집단 동학언니들을 만났다.

 

 

  장소 : 공주시 계룡면 소라티길 38-13 

  일시 : 2015년 4월 25일 16 : 00 ~ 18 : 30분

  탐방기록 : 이민재 PM, 조준용(사진)

  면담자 : 고은광순 

 

  동학언니들의 최초제안자인 고은광순은 한의사이며 사회운동가로 널리 알려졌다. 

  1992년 부실한 한약 제조법이 쉽게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한의학 체계화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여론변화를 이끌어 낸 적 있으며, 1998년부터는 남녀 평등을 위해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며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펼쳤다. (호주제는 2008년에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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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안녕하세요, 선생님. 동학언니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은광순) 동학언니들은 “동학하는 언니들”, “동학을 사랑하는 언니들”, “동학소설을 쓰는 언니들”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동학소설을 쓰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라고 보시면 쉬울 거에요.

 

 

 

이민재) 선생님께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사회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번 동학소설 집필 같은 경우는 뜻밖인데요. 어떻게 선생님의 발자취와 현재의 프로젝트를 연관하여 이해하면 좋을까요? 

 

고은광순) 사실 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동학언니들이 동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에요. 그건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있었던 어수룩한 농민들의 실패한 혁명, 그게 저희가 동학에 대해서 갖고 있던 이미지였거든요. 죽창을 들고 흰 두건을 쓰고 전투를 벌이다 실패한 사람들. 그리고 전봉준. 이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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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그 생각이 언제 바뀌신 건가요?

 

고은광순) 낙향해서 충북 청산에 한의원을 지으려고 자리를 알아보려 다니는데, 해월 최시형의 옛 묘자리가 마을 한 쪽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 ‘아니 동학하던 사람의 묘자리가 왜 충청도에 있지? 전라도에 있는 거 아니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창피해. 정말 무식했던 거지 (웃음)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 거에요. 동학이 시작했던 지역은 경상도였고, 가장 융성했던 곳은 충청도였고, 전라도를 비롯해 조선 팔도 전역에 퍼져 있었다는 거에요. 그게 동학에 대한 편견이 깨지게 된 계기였어요. 그 이후 동학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듣고 보게 되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예를 들자면 당시 동학은 조선 인구의 30% 이상이 따랐던 사상이라든가 하는 사실 말이에요.

 

 

 

이민재) 그 외에도 흥미로운 얘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동학언니들에 속하신 열다섯 분은 동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큰 감명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감동이 소설쓰기라는 쉽지 않은 작업에 나서고 마치게 해 준 원동력으로 생각됩니다. 사상으로서의 동학이 지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고은광순) 가장 많이 끌렸던 부분은 차별이 없는 문화에요. 네 속에도 한울이, 내 속에도 한울이 있다고 말하면서 상호존중을 하다 보면 자연히 차별이 사라지지 않겠어요? 차별의 문화, 권위의 문화는 시대의 사회구조를 고착화하고 의문을 봉쇄하는 역할을 합니다. ‘니가 성공하지 못 한 건 노력이 부족해서야. 불평하지 마.’ ‘버릇없이 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넌 원래부터 그런 애니까, 그렇게 살아야 해.’ 이런 게 전부 차별의 문화, 권위의 문화로부터 파생된 말의 아귀들이지요.

차별과 권위가 사라지면 의문이 생겨나요. 왜 이럴까? 이래야만 하는 걸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그리고 이렇게 쌓인 의견을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게 됩니다. 차별이 없는 세상은 이상적인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계를 이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셈이지요. 적어도 동학에서는요.

지금까지 제가 살펴본 바로는 동학에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요. 사람들의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위대한 상상을 했을 뿐이지요. 실제로 그렇게 만들 방법도 갖추고 있었고요. 

 

 

 

이민재) 동학이 융성했던 19세기 중후반보다 현재의 삶은 더 바쁘고, 삶이 바쁘게 돌아갈수록 상상력은 빈곤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시대에 동학을 얘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요?

 

 고은광순) 어렵지요. 그래서 소설을 택하기로 한 겁니다. 자료에 기반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되, 누구나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또 그런 게 동학의 방식과도 맞아요.

  동학이 융성했을 때에도 동학은 누구를 설득하지 않았어요. 남을 존중하고 나를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동학이었고, 그런 삶을 지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동학을 사상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거에요. 동학언니들도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보여줄 뿐이지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길 바랍니다.

 

 

 이민재) 오랜 시간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은광순) 고맙습니다.

 

 

  문학적인 글쓰기의 기초는 내가 사랑한 것, 내가 그것을 사랑하는 이유를 모두가 알 수 있는 말로 푸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대로 동학언니들이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이 모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소설이 완결되고 출판되길 바란다.

 

 

 

인터뷰 일시 : 2015. 04. 25

인터뷰 장소 : 공주시 계룡면 소라티길 38-13
탐방자 : 이민재
세상을 바꾸는 사회적활동가 : 고은광순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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