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의 짧은 워크샵 일정 속에서도 꼭 들려야 할 곳이 있었다.

대정읍 구억리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평화의 마을이 그 곳이었다. 평화의 마을은 장애우 재활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고용하여 햄과 소시지(제주맘) 등의 육가공 제품을 만들고 있다.

 

제주맘은 IFFA(주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3년마다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식육ㆍ육가공 박람회. 육가공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이기도 하다.)에서 6개의 금메달을 받기도 한 저력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바쁘다고 한사코 고사하시는 평화의 마을 원장님, 제주맘 대표, 이귀경 박사님께 거듭 거듭 면담을 요청하여 마침내 만나 뵙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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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주맘에는 아질산나트륨을 비롯하여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심지어 인산염도요.

 

A. 아질산나트륨은 넣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산염은 넣어야죠. 최소한도긴 하지만.

육가공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잘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어요. 그럼 이런 예를 들어볼까요... 저희 제주맘의 제품 중에 불고기 소시지라는 게 있어요. 이게 레시피에 된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개발 단계에서 제 마음에 계속 걸렸던 건, 요새 시중에 판매되는 된장이 발효식품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 화학식으로 제조되거든요. 그렇다고 유기농 된장을 구입하자니 가격도 비싸고, 양도 좀 모자라고, 여러 곳에서 사오려니 제품에 편차도 생기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콩 재배 농가에서 메주를 띄워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직접 된장을 담가 사용하자는 거죠.

그러니까 난리가 났어요. ‘원장님, 그러면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어요.’ 그래도 좋다. 우리가 한 번 해 보고, 정 안 되면 그 때 가격을 올리자. ‘아이고, 원장님. 그렇게 비싼 소시지를 누가 사요.’ 가격이 비싸지면 새 판로를 찾으면 된다. 해 보자. 다들 긴가민가하면서 된장 담그고, 마늘 말리고, 고추 널고 그러면서 만들었어요.

 

Q. 원료 대부분을 제주 지역에서 조달해서 가공하신다는 말씀인데, 기업이 그렇게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기는 많이 힘들지 않는지요?

 

A. 맞아요, 힘들죠. 그래도 전 그런 방식을 고집했어요. 몸에 안 좋은 것을 알면서 굳이 화학첨가물을 제품에 넣고 싶지 않았거든요.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넣지 않고, 넣고 있던 것도 기술 개발을 하고 다른 방식을 고민하면서 안 넣거나 줄일 방법을 찾고 있어요. 물론 그러면 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또 다른 고민이 생기죠. 소시지의 유통기간이 짧아지고, 가격이 뛰고... 그렇다고 해도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거죠. 딸려오는 문제들은 해결하면 되요. 그렇지만 가치를 잃고 목표점을 잊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점은 무엇이냐? ‘내 아이가 먹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자’ 그게 우리의 가치이고 꿈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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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러고 보니 제주맘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고집하는 것 같습니다.

 

A. 그렇다기보다는, 결국 싸구려를 안 만들겠다는 거예요.

‘우린 이런 저런 면에서 다른 기업한테 밀리니까, 가격이라도 낮춰야지. 어떤 방식으로든 싸게 만들어서 팔아야겠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하면 사회적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이길 수가 없어요. 비슷비슷한 물건 사이에서 튀어 보일 수가 있나요? 없죠? 게다가 우리는 인지도도 낮고 대량생산도 안 돼요.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을 여유도 없고. 아등바등하면서 몇 년 버티다가 정부 보조금 끊기고 지원금 끊기면 망하는 거예요. 세금 낭비에요, 그건.

 

Q. 그래도 사회적 기업이면 고정수요가 있지 않나요?

 

A. 잠깐은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요,

‘사회적 기업이니까 사람들이 봐 줄 거야.’ 이런 생각이 시장에서 통할까요?

안 통해요. 절대 안 통해요. 시장에선 누구나가 경쟁자에요. 사회적 기업들 마인드가 너무 나약한 면이 있어요. 경쟁을 하고, 전쟁을 하고, 싸워야 해요. 대기업들은 우리보다 훨씬 자본도 많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인력이며 자원도 월등하고 부속 연구소도 몇 개씩 딸려 있고 하는데, 그들과 시장에선 맞대결을 해야 하거든요. 작은 기업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요.

그리고 또, 사회적 기업이면 사회적 미션을 수행해야죠.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고용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수익을 좋은 일에 쓰고, 선순환구조를 만들고, 다들 그 생각들은 많이 하세요. 잘 하시는데, 제품 생각은 잘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사회적 기업의 제품 역시 가치 있는 제품이 되어야 해요. 그러면서 시장에서 경쟁력도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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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회적 기업이 대기업과 싸우는 게 가능할까요?

 

A. 일반적인 방식으론 힘들죠.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건 ‘선점’입니다. 선점의 효과는 무시 못 하거든요.

우리 기업의 시작부터가 그랬어요. 누가 제주도에서 햄 만들고 소시지 만들어서 팔 생각을 하겠어요? 널린 게 먹을거린데. 제주사람들한테 싸구려 인스턴트식품은 못 판다는 생각이, 제주에선 햄이나 소시지를 못 판다는 선입견으로 이어졌던 거죠. 근거는 없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다들 그렇게 믿었던 거예요. 선점은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을 깨는 것이기도 해요.

 

Q.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마이컴퍼니도 여러가지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A. 찾아줘서 고맙습니다. 오마이컴퍼니도 지금까지 하셨던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하시길 바래요.

 

박사님의 차분한 목소리와 조곤조곤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확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박사님이 간직한 강한 의지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짧게 소개하느라 인터뷰의 전문을 싣지 못 하는 게 못내 아쉽다. 다양한 제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 IFFA에서의 에피소드,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 사회복지법인의 운영자로서 박사님이 갖고 있는 고민 등등.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 자산을 바탕삼아 앞으로 나가는 오마이컴퍼니가 되길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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